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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오늘도

애착이 뭐길래

 

-애착의 목적은 건강한 분리 혹은 엄마의 자유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장면을 꼽으라면 엄마와 헤어질 때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숨 넘어가게 우는 아이다. 두 돌에 엄마와 사별한 내겐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내 아이를 직접 키우는 일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아이가 자연스럽게 엄마와 떨어지기 전에 억지로 떼어놓는 일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없다. 임상심리전문가 이현수는 엄마 냄새에서 말한다. “아이를 대상으로 한 시간 투자에는 한가지 불가피한 속성이 있다. 반드시 그때, 즉 아이가 어렸을 때 제공해야지 나중이 되어서는 거의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라고 한다. 이 시기에 부모의 시간을 제대로 투자 받은 아이가 온전하게 자란다.” 결정적인 시기에 부모에게 안정적으로 붙어(attachment) 보는 경험을 애착이라고 한다. 이왕이면 생후 36개월에 엄마와의 애착을 형성하면 가장 바람직하다고 내가 본 모든 이론서에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릴 적 형성한 고정된 애착 패턴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간다. 만 세 살 이전에 안정 애착을 경험하면 그 힘으로 평생을 살아갈 에너지를 확보하게 된다. 이 말은 곧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것 이상으로 출발선부터 엄청난 차이다.

 

절대양육기간을 지나 도서관에서 엄마들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 매주 필독서가 주어지고 독서와 상담을 접목시킨 수업이다. 절대양육기간에 읽었던 주옥 같은 책들이 수업을 기획할 때 도움이 되었다. 어린 자녀를 동반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했다. 돌이나 두 돌쟁이를 대신 맡아줄 손이 없는 경우, 자녀를 떼어 놓고 엄마 홀로 두 시간 강의를 듣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업 첫 시간에 9개월 된 딸을 띠에 메고 수업에 참여한 83년생 젊은 엄마가 있었다. 돌 전의 아이는 칭얼대면 졸리거나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녀는 아이가 배가 고플 땐 젖을 물려 재우고, 기저귀가 젖으면 한 귀퉁이에서 갈았다. 청강생들이 모두 엄마들이니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아이를 데리고 강의 들을 생각은 꿈도 못 꾸었다며 대단한 엄마라고 모두 입을 모아 칭찬했다.

 

육체적 노동에 시달리는 돌 전에 책 읽는 일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생각해볼 때 매주 주어진 책을 읽고 딸을 데리고 수업에 참여하는 엄마의 열정이 크게 느껴졌다. 7개월 딸도 아주 훌륭한 청강생이다. 피아노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음악치료를 공부한 야무진 엄마는 수업을 몇 주 들었을 즈음,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시간을 내서 할만한 일을 제안 받아 고민이라며 털어놓았다. 절대양육기간을 지나면서 여러 차례의 유혹이 온다. 아이가 돌 만 되도 많이 큰 것 같고 두 돌이 되면 자아를 찾아 떠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나도 아이가 두 돌을 지날 때 집을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을 잠재우느라 애를 먹었다. 아직은 아이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와 '욕망' 사이에서 괴로웠다. 24개월 즈음 또 다시 그런 유혹에 갈등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고 미리 말했는데 정말 딱 그 시기에 다시 한번 내게 연락이 왔다. 상충되는 목표 사이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서 육아 외에 무엇이라도 하게 해준다면 영혼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라면 심한 오버일까.

 

아직은 엄마가 절실히 필요한 자녀를 맡기고 일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죽느냐 사느냐만큼 절박한 고민이라는 것을 그 시기를 지나온 엄마라면 안다. 나도 그랬다. 엄마만큼 내 자녀를 잘 돌 볼 사람이 없는 것처럼 그 고민 또한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다. 다만엄마와 보내는 3년의 중요성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알려주었을 뿐이다.

 

아이에게 부모의 보살핌이 생명과도 같은 시기가 있다. 아이가 어릴수록 혹은 엄마를 점점 인식하게 되면서 오로지 주 양육자에게만 죽어라 매달리고 엄마가 없으면 죽을 것처럼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트리는 때 말이다. 남편에게 아이를 잠깐 맡기고 볼일을 보더라도 한 두 시간 안에 후다닥 일을 보고 돌아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어찌나 불안한지 내가 없으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안절부절 못하곤 했다. 그만큼 절대양육기간의 아이에겐 엄마가 우주이고 전부라는 것을 아이의 절대적인 의존성을 보면 회피하기 어렵다.

 

12주간의 수업 중 첫 4주간은 애착의 중요성과 엄마가 된 자신은 어떤 양육을 경험했는지 원 가족 관계를 돌아볼 수 있도록 수업을 진행했다. 젊은 엄마가 고민을 털어놓을 즈음의 필독서는 마침 엄마 냄새라는 책이었다. 이 책엔 이런 말도 나온다. “하루 3시간은 아이를 온전하게 자라도록 하는 매직타임이며, 3년은 엄마의 냄새와 온도를 제공해야 하는 최소한의 역치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3년 동안 제대로 투자했다면 4, 5년 투자한 것과 아주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3년을 제대로 채우지 못했을 때는 하늘과 땅 차이로 결과가 달라진다.”

 

책을 읽은 엄마는 다음 수업에서 지금이 딸에게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았다며 미련 없이 일을 포기할 수 있었다며 내게 고마워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고 중요한 일인지 자신이 그 동안 너무 오만 방자했구나. 아이에게 미안하고 언젠가 생길지도 모르는 부채감에 대해 지금 최선을 다하겠노라는 엄마의 고백은 오히려 내게 감동이었다. 육아서를 읽고 수업을 들으면서 불안감이 덜해지고 아이와 3, 아니 최소 2년이라도 곁에 있어주겠다는 결심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그녀의 눈빛이 촉촉하다.

 

결국 인생 고비고비 선택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자신에게 달렸다. 하지만 절대양육기간에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전적으로 도맡아 키우기로 결심한 엄마들이 워킹맘보다 불안감이 더 크다는 것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엄마의 부재로 자란 내가 그 공백기를 채우기 위해 힘겨운 시간을 보냈기에 엄마가 되면 기필코 내 손으로 키우겠노라 했던 나도 불안감에 흔들리곤 했으니까. 아이에게 3년이라는 시간을 준다고 해서 내 인생의 퇴보나 정체는 결코 아닐진대 그 터널을 지나면서 나만 혼자 다른 행성에 떨어진 것 마냥 소외된 느낌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애착 형성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도 잘 알지만 내 안의 또 다른 욕망을 인정하고 잠시 유보 시키는 것이 그 시간을 지나면서 가장 힘겨운 정신적 어려움이다.

   

엄마가 곁에 있을 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아무런 두려움 없이 놀이에 빠져드는 아이를 보라. 엄마라는 존재는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느끼는 정서적 안정감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엄마를 절실히 원하는 눈빛만 봐도 안다. 꽃봉오리가 때가 되면 저절로 자신의 꽃망울을 터트리는 것처럼 아이도 사랑과 관심을 충분히 받으면 엄마 곁을 떠나 세상을 탐색하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된다. 그 때가 되기를 인내하며 지켜주는 것이 바로 내가 할 일이었다. 엄마가 안전한 베이스 캠프가 되어준다는 것을 확인하면 일정 시기가 지나 불안해 하지 않고 자신의 관심을 외부로 돌릴 수 있는 에너지를 갖게 된다.

 

자신에게 전부였던 엄마라는 우주를 건강하게 경험하면 더 이상 세상이 두렵지 않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그 누구보다 외부 탐색을 잘 하는 아이로 자란다. 밝고 행복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만큼 엄마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거나 결핍을 채우는데 자신의 에너지를 쏟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쿨하게 '안녕'하며 유치원 버스를 타는 아이로 인해 서운해질지도. 그 날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 3년의 시간을 아이에게 그저 주는 것이다. '애착의 목적은 건강한 분리'라는 말을 확인하는 날 삼페인을 터트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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