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의 경우 독일은 8월(주 별로 다를지도 모르지만, 니더작센주)에 새로운 학년을 시작한다. 한국에서 1학기가 끝나고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7월 말로 항공권을 끊었다. 6개월 전에 항공권이 확정되고 결정의 피로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한결 편안했지만 그때부터 두려움은 급속도로 엄습했다.
불안한 마음은 계속 남편에게 투사했다. 그리 현실적인 사람도 아닌데 판단형(내가 계획하기 어렵고 통제에서 벗어나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다) 기질이 작동해서인지 늘 최악의 상황을 염두하곤 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 한다. 내 나름의 합리화는 미래를 최대한 미연에 예방하기 위해서라지만. 생각보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방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불안한 마음은 종종 부부싸움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나보다 더 불안하고 겁날 사람은 남편인데 나는 매번 들쑤셨다. 우리가 과연 독일에서 잘 살 수 있을까. 우리가 갖은 돈으로 얼마를 버틸까. 등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공론화시켰다.
출발 6개월 전에 가장 많이 싸웠지만 대화를 가장 많이 했다. 그 무렵엔 남매가 둘이서 집에 있을 만한 나이였다. 큰 아이가 3학년이니 만화라도 틀어주면 동생과 한 시간은 거뜬히 있었다. 남편과 매일 밤 한 시간씩 산책했다. 아파트 단지를 나와 목화밭을 지나 새로 지어진 체육관과 도서관을 지나 멀리까지 돌아 다시 집으로 오는 길엔 늘 달이 밝았다. 여름밤 공기는 적당히 시원했고. 대화라고 하고 싶지만 매번 유쾌하진 아니었다. 불안을 말로 꺼내 직면하면 더 불안이 아닐때도 있다. 애틋하기보다는 언제 터질지 몰라 아슬아슬했지만 늘 손은 습관적으로 잡고 걸었다.
함께 걷는 의식이 독일에 와서도 지금껏 2년간 지속했다. 그 시간을 통해 우린 정서적으로 많이 안정되고 친밀해졌다. 손을 잡고 걷는 일은 부부가 함께 하기에 사소하지만 확실히 좋은 의식이다. 공간만 양주에서 독일로 바뀌었을 뿐 우린 맑은 공기를 마시며 숲길을 매일 걷는다. 어쩌면 힘든 시간을 잘 견디게 해 준 시간이다. 실제 통장의 잔액은 줄어들었지만 부부 관계 통장엔 돈이 듬뿍 쌓이면서.
우린 종종 걸으면서 철학적인 질문들을 주고받는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당신은 나랑 결혼해서 좋아? 내가 죽으면 어떨 것 같아? 독일에 오길 잘 한 걸까? 남편이 취직하기 한 달 전쯤엔 이런 이야기도 했다. 우린 다 가진 것 같은데 돈만 없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들. 남편은 이젠 내가 돈만 벌면 우린 완벽해지겠네.라고도 했다. 돈이 있고 다른 것이 없는 것보단 돈이 없는 편이 훨씬 나은 것 같다. 라고도. 돈에 관해선 마음의 근육이 많이 단련된 것에 만족했다. 채워져야 할 마지막이 돈이라서 다행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한창 불안해할 때 외국에 이미 사는 언니는 그랬다. 너희가 계획한 대로 잘 될 수도 있지만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부부가 서로를 원망하면 가족이 침몰할 테니 너흰 한 팀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애쓰라고. 최악의 상황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되니 비행기 티켓 값은 남겨두라고도. 서로를 탓하며 원망할 이유는 무궁무진했다. 힘들면 자동으로 남편 탓을 했다. 독일에 오자고 한 장본인이 남편이니까.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이방인으로 사느라 어려울 때마다 우리끼리 에너지 소모전을 하면서 지칠 이유는 없었다. 남편이 늘 했던 말이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살려고 독일에 온 것은 아니니까. 힘들어도 참고 견디자고 했던 말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초반에도 중요한 프로젝트를 부부가 함께 수행하면서 좋기만 하지는 않다.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힘듦을 탓하며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린 한 팀으로 자녀를 잘 보살펴야 하는 것처럼. 독일에 정착하는 일도 그랬다. 낯선 환경이 주는 공포가 분명 존재하고. 그로 인한 불안감은 높아지고 스트레스 지수도 절대 안정적이지 않다. 그럴 때 부부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시간이 없었다면 버티기 어려웠을 거다.
순간순간 무엇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지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해갈된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가 보이고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힘 내서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면서. 고립된 느낌이 강하게 들곤 했지만 덕분에 우리 팀워크는 더욱 공고해졌다. 새로운 터전에서도 여전히 잘 적응해서 행복한 일상을 만끽하는 순간을 상상한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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