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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곳보통날

학년의 마무리, 학교 축제 : Schulfest

 

6월 첫째 주 금요일 오후 세 시 반, 학교에서 <Schulfest 학교 축제>가 있었어요. 꼭 이맘때 열려요.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전, 한 학년이 끝날 무렵에요. 2-3주 전에 안내문이 오고, 각 반 왓츠앱(우리 나라의 카톡같은)에선 축제 준비가 시작되어요. 축제가 끝나면 곧 한 학년이 마무리되고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는 거죠. 앞으로 3주 있으면 길고 긴 여름 방학이 시작되겠군요. 니더작섹주는 6월 마지막 주부터예요. 큰 아이 초등학교 졸업은 6 27일이고요.

 

이 행사는 전적으로 학부모들이 준비해요. 행사를 참여하면서 여럿이 함께 시간과 약간의 품을 들이면 큰 비용이 들지 않는 품앗이가 딱 떠올랐어요. 왓츠앱에선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요. 행사에서 먹거리가 빠지면 안 되니깐, 각 반 별로 필요한 케이크 세 개랑 핑거 푸드 그리고 커피와 음료수 물을 누가 준비할지 자원으로 받아요. 그 외에도 아이들이 놀만한 놀이를 준비하는 데 그것도 모두 엄마, 아빠가 준비해요. 그날 놀이 도우미는 누가 할지까지요. 서로 조금씩 시간이나 물질로 도우면 행사가 아주 풍성해져요. 4학년과 1학년 아이가 둘이니 정신이 없더라고요. 전 이방인이니까. 적극적으로 나서진 못하고 엄마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봤어요.

 

우리로 치면 김밥이나 떡볶이 대신 케이크나 머핀을 만들어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재학생들에겐 음료수와 케이크 한 조각씩 먹을 수 있는 쿠폰을 미리 나눠주고요. 나머지는 저렴한 가격에 사먹게 쿠폰을 팔아요. 예를 들면 머핀 하나에 50센트 커핀 한잔에도 50센트 뭐 이런 식으로요. 엄마들이 직접 만들어온 음식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사먹을 수 있는 거죠. 어김없이 한쪽에선 아빠들이 소시지를 구워서 바게트에 끼워 팔고요. 그건 1.5유로로 제일 비싸요. 과일 꼬치나 쿠키 같은 것도 많고요. 한 반에 케이크나 핑거 푸드 그리고 머핀 음료수 등을 조금씩 준비하니 아주 풍성한 간식이 준비되더라고요. 그걸 판매하는 사람이 필요하니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돕고요.

 

학교 숲 여기저기엔 놀이가 준비되었고요. 요즘 독일 날씨가 30도에 육박해서 엄청 더울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 날씨는 흐려서 야외에서 놀기엔 괜찮았어요. 페이스 페인팅이라던가 배지 만들기, 공차기, 어떻게 보면 좀 유치한 게임이 한 7개 정도 준비되었고 쿠폰제로 운영되어서 한 번씩만 이용할 수 있어요. 그래야 오래 기다리거나 복잡한 일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학교 축제라고 모두 참석한 것은 아니고 시간 되는 사람만 와서 여유롭게 즐기면 되더라고요. 담임선생님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이야기하고요.

 

친한 사람도 없고 신경 써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거 자체가 귀찮고 스트레스라 그냥 간단히 인사만 하고 케이크만 사서 열심히 먹었어요. 입은 달콤한데 마음은 괜히 쓸쓸한 기분은 뭔지 모르겠어요. 다행인 건, 독일 사람들이 타인을 기웃거리거나 크게 관심 두지 않고, 그들끼리도 엄청 친해 보이지 않아서인지 큰 소외감은 없어요. 물론 큰 아이 친구들 엄마들과는 포옹으로 인사할 정도로 반가웠어지만요. 아이들끼리 워낙 친하기도 하고 2년간 알고 지냈으니까요.

 

외국어(Fremdsprache)라는 단어에 이방인(Fremd)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은 우연이 아니었어요. 외국어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사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느끼는 미묘한 감정이 있어요. 겨우 두 시간 있었을 뿐인데 어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 굴뚝이었어요. 큰 아이는 한국에서 놀던 대로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마침 그날 축구에서도 일등을 해서 상품도 받았어요. 작은 아이는 친한 친구가 오지 않았다면서 저를 끌고 다녀줘서 얼마나 고맙던지요.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 아니면 나서서 이야기도 하지 않고, 친한 사람과는 잘 섞이지만 낯선 사람과는 그리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니에요. 한국에서도 마음 준 몇몇 엄마와만 지속적인 만났어요. 지금 순영님과 태린씨를 오랫동안 만나오는 것처럼요. 여기서도 그래요. 낯을 많이 가리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누군가와 소통하는 일이 사실은 즐겁지만은 않아요. 친한 사람과는 서툴어도 말을 잘하는데 그렇지 않을 땐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듯해요.

 

계산해보니까 일주일에 5시간 정도 외국인을 만나더라구요. 그 중 세 시간은 독일어 수업이고 나머지는 영어로 만나는 친구들인데, 솔직히 그 시간만으로도 전 아주 버거워요. 그렇다고 엄청 스트레스 받는 건 아니지만 독일어 수업을 하러 가기 전엔 당 떨어지지 않게 배를 든든히 채워요. 수업 끝나면 엄청나게 허기지거든요. 피곤이 급속도로 몰려오고요. 산책 친구를 만나는 일은 즐겁지만 영어로 대화하니 그것도 즐거우면서 피곤해요. 그 외의 다른 약속 혹은 행사가 있으면 극도로 예민해져요. 학교 축제도 그 중 하나였어요.

 

독일어만 하는 곳에 그것도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 가야 한다는 것이 며칠 전부터 어찌나 스트레스가 되던지요. 별거 아니다. 겁먹지 말자고 스스로 되뇌었는데도 편하지 않은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일부러 30분 정도 늦게 갔어요. 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커서 얘들만 보낼까 했는데 남매는 워낙 가고 싶어하니 가지 않을 수도 없죠. 게다가 4학년 축구에서 무슨 용기로 도우미를 하겠다고 했는지 그것에 대한 부담도 컸죠. 뭐 이런저런 별거 아닌 것까지 다 일일이 신경 쓰는 제가 못마땅했던 것 같아요.

 

한국이었다면 최소 언어를 신경 쓸 일은 없을 테니까요. 하긴 그 외에 다른 것, 무슨 옷을 입고 가나. 머리 스타일 등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은근 신경이 쓰였을까요. 뭔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꺼림칙해요. 내가 이방인이라는 게요. 잘 생각해보니 원하는 만큼 이야기를 편하게 하지 못해서인가봐요. 말하기 좋아하는 내가 꼭 중요한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당당히 못 하는 것 때문이라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어렴풋이 느껴요. 그 아쉬움은 편지로 써서 선생님에게 전달하려고요. 정말 고마운 마음이 있는데 그걸 다 전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나 봐요.

 

이상하게 저런 모임에서 케이크를 먹으면 김밥과 떡볶이 오뎅국물 이런 게 막 떠올라요. 한국이 그리워지는 순간은 어김없이 음식이 떠올라요. 김밥 안에 들어가는 다양한 속만큼이나 울긋불긋 다양한 빛깔의 머핀과 케이크 간격만큼 제가 이방인이라는 걸 체감하는 듯해요. 씩씩하게 악수하면서 구텐탁! 을 외치는 것보다는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문화가 그립고요. 그냥 즐기면 되는데 괜히 긴장했나 싶기도 하고요. 어쨌든 끝났어요. 케이크를 너무 많이 먹었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