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에서 해방을 꿈꾸며

 

내가 어질러 놓은 것도 아니고 나 혼자 밥 먹은 것도 아닌데 집안 정리와 싱크대에 산처럼 쌓인 설거지를 혼자 해야 할 때 억울하다. 그것을 단 일주일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 해야 할 지 기한도 없고 끝도 보이지 않을 때 난 자주 기운이 빠진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집안일에 아침부터 한숨이 푹푹 쉬어지는 날,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칠 것만 같은 날은 모르쇠하고 싶어진다.  

 

남매를 학교와 어린이 집에 보내자 마자 여기 저기 벗어놓고 간 녀석들의 허물들을  모르는 척, 보이지 않는다 주문을 외운다. 지금 치우지 않아도 괜찮다. 되 뇌이며 이렇게 글을 쓴다. 지금 시간 아니면 오늘 안에 내가 마음대로 쓸 시간은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난 이후까지는 없기 때문이다. 설거지 좀 쌓아둔다고 누가 벌금을 물리는 것도 아닌데 바로 해치우지 못한 날은 왜 이렇게 뒷덜미가 땡기는지, 설거지들이 날 자꾸 부르는 느낌이 들곤 한다. 사실은 지금도 그렇다. 개수대에 담긴 그릇들이 자기도 깨끗이 씻겨달라고 아우성을 치며 나를 부르는 듯하다.

 

엄마는 왜 집안일에서 자유 하지 못하는가? 엄마이기 때문에 집안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안 된단 말인가. 이것이 늘 의문이다. 요리와 빨래는 중요하고 급한 부분이니 포기할 수 없더라도 그 외의 정리정돈과 매일 돌려야 하는 청소기 좀 돌리지 않는다고 누가 내게 돌을 던질 것인가. 집안일에도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결혼 전에는 게의 치 않고 살았던 것들이 엄마가 되고 나니 이래야 한다 이 정도는 해줘야지 라는 의무감으로 스스로를 볶아댄다. 어차피 깔끔하게 잘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완전히 놓지도 못하는 이 기분 나쁜 부채감, 이것을 어떻게 잘 데리고 살 것이냐. ‘오늘 저녁은 뭘 해먹지.’ 하지 않을 수도 없고 하긴 해야 하는 저녁 메뉴를 쥐어짜 내는 것만큼이나 고민되는 일이다.

 

살림이라는 게 참 그렇다. 열심히 치우고 한다고 해도 애들이 어린 시절엔 티도 나지 않는다. 언제 치웠냐는 듯이 삽시간에 어질러지는 것을 보면서 허무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굴려도 굴려도 다시 제자리에 놓이는 시지프의 형벌처럼 그때 그때 해야 하는 일들을 하루라도 거르거나 잠시라도 쉬는 날엔 일이 몇 배로 늘어나서 날 괴롭힌다. 날 좀 봐달라며 빽빽 울어대는 아이마냥 집안일은 소리만 질러대지 않을 뿐이지 날 째려보고 있는 아이 같다.(이렇게 쓰고 보니 좀 무섭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공불락에 빠지기 일수다. 오히려 아이가 어릴 적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내 다리 밑에서 “엄마 놀아줘” 하며 매달리는 아이가 싫지 않았다. 얼씨구나 설거지를 하지 않을 핑계를 대며 아이들과 놀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있으니 핑계가 좋긴 하다. 물론 그 뒤에 식사 시간이 지체되고 힘들긴 하겠지만 말이다. 

 

열심히 해도 티도 나지 않는 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일이다. ‘그 놈의 살림’에 정 좀 부쳐볼라고 살림을 기똥차게 잘하는 띵굴마님의 ‘살림이 좋아’ 책을 사서 보면서 처음엔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감탄했다. 그러다가 먼지 한 톨 없는 깨끗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어디 먼지라도 묻힐까 봐 불편해서 오래 못 있다가 부리나케 집에 돌아온 것 같은 이 불편한 느낌은 뭐지. 거기에서 끝나면 좋으련만 집에 와서는 내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공부 못하는 아이 대하듯 쯧쯧 거리며 넌 왜 이 정도밖에 못하니 그러면서 자격지심에 빠졌다. 그런 책은 우리 집에 더 이상 둘 수 없어서 살림 좋아하는 친구에게 얼른 줘버렸다. 속이 다 시원하다.

 

한때는 ‘살림’의 사전적 의미를 적어놓고 그렇지 내가 하는 일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지, 나란 사람은 의미를 부여해야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내가 하루라도 아프기라도 해봐 집안이 돌아가질 못해.자긍심을 갖고 더욱 열심히 노력해보자. 다짐을 했다면 지금은 내가 없어도 돌아갈 수 있는 가족 시스템을 구축하는 편이 온 가족이 윈 윈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시스템을 구축할 것인가 머리를 굴리고 있는 중이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책에서 정리라는 것도 배워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읽으며 큰 깨달음을 얻은 날 옷장을 다 뒤집어 엎으면서 버릴 것들을 왕창 골라내면서 쾌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때 뿐이고 그 마음이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의 원칙은 이렇다.

하나, 깨끗한 집에 놀러 가지 않는다. 가더라도 내가 사는 집과 절대 비교하지 않는다.

둘, 설거지와 청소는 내가 하고 싶은 일(중요한 일)을 먼저 한 이후에 시간이 남으면 한다. 

셋, 정리 정돈을 잘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 자책하지 않는다.(물건은 제자리에 놓기/간소한 살림 유지 등 기본 원칙 지키기) 

넷, 그 외의 나의 강점(요리와 아이의 욕구에 반응을 잘 해주는 것)에 집중한다. 

다섯, 하기 싫은 일은 외출하기 직전 빠른 시간 안에 해치워버린다.

 

정리의 달인이나 살림의 달인으로 책 쓸 거 아닌 이상 스트레스 받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대충 하면서 행복하게 살자.가 내가 집안일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한 부분이다. 집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내가 집을 쓸고 닦으려고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엄청 깔끔한 엄마랑 사느라 사는 내내 불편하고 싫었는데 결혼해서 사는 지금도 가끔 자신의 집을 뒤집어 엎어 청소해주는 엄마 때문에 돌아버리겠다는 한 엄마의 고백이 날 위로해주었다. 내가 깔끔한 엄마가 아니라서 아이들에게 얼마나 다행인가. 집안일을 내려놓으니 아이들을 덜 잡게 된다. “마음껏 어질러라. 너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그 속에서 영 글 것이니. 대신 가족공동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일주일에 한번 대청소 날은 잊지 말거라. 엄마는 혼자 죽어라 청소하는 거 억울해서 못사는 사람이니라.”

  

이렇게 아침에 집안일에서 자유로워지자며 글을 썼건만, 오늘 친구 집에 초대받아 놀다 온 아들에게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묻고 말았다. “아들아, 그 친구 집은 어때?” “응 엄청 깨끗해. 새집 같아.” 그 한마디에 또 기분이 확 나빠지려고 하는 것을 지금 간신히 추스르고 있는 중이다.  

 

난 과연 집안일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기필코 자유로워지고 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