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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곳보통날

유럽 여행보다 그리운 고향

유럽 여행보다 그리운 고향


작년(2017) 6월 말에 3주간 한국에 다녀온 지 벌써 1년이 흘렀어요. 솔직히 한 번 다녀온 뒤엔 한국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제가 한국에 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한계치가 일 년은 아닐까 싶어요.

 

독일에서 보낸 첫해엔 한국에 가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죠. 6개월 전에 한국 가는 티켓을 끊어두고 그날만 손꼽아 기다리면서 나머지 반년을 버틸 만큼요. 4식구가 한국에 가려면 비용도 만만찮아서 엄두가 나지 않지만 미리 예매하니 저렴했어요. 만약 한 번은 고향을 갈 수 있다면 일 년쯤 산 시점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얘들도 친구를 가장 그리워한 때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고생한 것에 보상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어서 무리를 해서라도 한국에 다녀오는 게 정서적으로 좋을 것 같았어요.

 

막상 가서 보면 생각보다 별거 없다는 것을 경험해 보는 게 제일 좋으니까요. 친구나 친지들의 그리움도 해갈시키고요. 6월 말의 한국은 상당히 더웠어요. 사십 년 가까이 살 적엔 그러려니 하고 살았던 더위가 유럽에 일 년 살다가 가보니 너무 덥게 느껴지는 거예요.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 안에 딱 들어가니 바로 몸이 그 더위를 기억해냈지만요. 원래 살면서 서서히 적응하는 거랑, 낮 기온 7~8도 정도 차이 나는 곳에 살다가 갑자기 확 기온이 올라가니 몸이 적응하기가 힘들었어요.

 

게다가 3주라는 어쩌면 짧고 어쩌면 긴 시간에 만날 사람을 다 만나야 하니 체력이 못 따라갔죠. 그 동안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을 한 번에 몰아 먹으면서 속이 부대끼는 것 마냥 만남도 그랬어요. 시차 적응뿐 아니라 기온 적응도 못한 상태에서 한국에 머물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게 마음을 조급하게 했죠. 그만큼 내게 중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꼭 만나야 할 사람만 만나게 했지만요. 음식도 다 못 먹을 시엔 정말 먹고 싶은 것만 고르게 되는 것처럼요.

 

 

원래 살던 양주 집 근처의 셋째 언니네 묵었어요. 양주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큰 언니가 거의 매일 점심에 와서 요리(위 사진은 창원에 사는 언니가 차려 준 감동의 아침상)를 해주었어요.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언니가 우리를 생각해서 해주는 음식을 먹었죠. 큰 언니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일 년 만에 만나니 엄청나게 잘해줬어요. 하긴 큰 언니만 그런 건 아니고요. 모두가 다 반갑게 그리고 진심으로 잘해주었죠. 가끔은 부담스러우리만치요. 군대 3년 갔다가 휴가 나오면 이런 기분일까요. 한편으론 군대 간 아들이 휴가 자주 나오면 너 또 나왔냐. 그런다는데 우리도 자주 가면 반가움이 반감될지도 모르겠네요. 돈도 많이 들고 앞으로 시간도 많지 않을 것 같고, 한 번 고향에 갔다 오니 내가 사는 곳에서 열심히 살아야겠다. 우리 집이 최고다. 뭐 이런 깨달음을 얻고 독일로 돌아왔어요.

 

딱 한국 다녀온 지 1년쯤 되니까. 고향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참 신기해요. 물론 전 한국인이 없는 곳에 살고 한인 교회도 나가지 않으니 더 그런가봐요. 마음만 먹으면 유럽 어디라도 갈 수 있는데 그렇게 확 당기지 않아요. 어느새 한국 가는 비행기가 얼만지 검색하고 있어요. 얘들에게도 이번 여름엔 절대 가지 않을 거야. 작년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열 시간 넘는 비행시간도 힘들고. 그 돈이면 여기서 유럽 여행을 하고 말겠어. 그냥 검색만 해보는 거야. 하면서요.

 

여름 성수기엔 얘들하고 셋만 간다고 해도 비행기 삯만 400만 원은 되더라구요. 바로 포기했죠. 마음 변하기 전에 얼른 네덜란드 가는 기차표를 예약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여름엔 독일에 남아 여행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