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짓는 엄마

남편의 어머니는 매일 밥을 하신다. 그것도 세끼를 꼬박 꼬박! 아들, 손자, 며느리가 시골에 내려가면 어머님께서 제일 잘하시는 요리 비법은 모두 공개된다. 보통의 날보다 더욱 열심히 밥을 지으신다. 외식은 거의 않는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더운 여름에 칼국수 면을 밀가루 반죽으로 밀고 팥물을 내려 팥 칼국수를 만들어주신다. ‘죽 집에 가면 언제라도 손 쉽게 사먹는 팥죽과 팥 칼국수를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야 하나?’ 하는 마음에 내 머릿속에선 어머님의 고생이 안타깝고 효율성을 따졌다. 그런데 왠걸, 어느 맛 집에서 먹어본 팥 칼국수보다 맛있었다. 팥죽 좋아하는 남편이 2시간 운전해서 찾아간 팥죽과는 비교도 안된다. ‘이렇게 진하고 고소하고 맛있어서 힘들어도 직접 만드시는 것이구나.’라고 대번에 인정했다. 남매도 엄지 척!을 올리며 “끝내주게 맛있다”는 감탄을 쏟아낸다. 온 가족이 맛나게 먹는 모습에 흐뭇해 하시는 ‘엄마의 마음’이 무엇인지 지금은 알겠다. 밥하다 지친 날, 어머님께서 만들어주신 진한 팥 국물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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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 땐 젊은 줄 모르고 건강할 땐 건강의 소중함을 모른다. 이십 대엔 건강을 돌볼 겨를도 건강에 대한 중요성도 알지 못했다. 건강은 건강할 때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는 진리를 아이를 갖고 싶은데 여러 번 유산 하면서 깨달았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끼니도 제대로 챙겨먹지 않았고 운동이란 건 ‘숨쉬기’와 ‘걷기’ 가끔씩 ‘산에 오르기’가 전부였다. 아침은 거르기 일쑤였고 빵으로 대충 때울 때가 많았다. 젊을 적 건강을 돌보지 않은 후유증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싶을 때 나타났다. 부실한 몸이 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아이를 갖기 위해 서는 부모 교육뿐 아니라 건강한 몸도 준비되어야 했다.

 

아이를 간절히 원할 무렵, 용하다는 한의원을 여러 곳 찾아 다녔는데 한 한의사가 점쟁이 같은 말을 해서 날 놀래게 했다. 맥을 짚어보더니 “언제 끼니를 거른 적이 있나요?” ‘끼니라…’, 한의사의 질문에 순간 머리 속이 하얘졌다. “이십 대엔 바쁘다는 이유로 끼니를 대충 먹은 적이 많았죠.” “그래도 그전에는 대부분 엄마가 끼니를 잘 챙겨주시지 않나요?””아! 그렇겠네요.” 어릴 적엔 ‘엄마가 아이의 밥을 챙겨준다’는 보편적인 범주에 들지 못했던 내게 한의사의 질문은 한동안 나를 많이 아프게 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만큼 자식의 ‘끼니’를 걱정하고 챙겨주는 사람은 없다. 아이 입에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알게 되었으니까.

 

솔직히 ‘끼니의 소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먹는 즐거움을 몰랐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친구들 앞에 꺼내 놓고 먹기 부끄러울 정도로 형편 없었던 새엄마가 싸준 도시락 덕분에 먹는 일은 괴로움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알약 한 알로 끼니가 해결되면 얼마나 편할까 상상하기도 할 정도로 밥을 매끼 먹는 것이 비효율적이고 귀찮은 일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알게 되었다. 먹는 즐거움을 경험해보지 못한 이유가 크다는 것을.

  

남편의 어머님만큼은 아니지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 더운 여름에 백숙을 하고 보쌈 고기를 삶는다. 가족들이 흘리는 땀을 생각하면 어느 때보다 잘 먹여야 한다는 사명이 불끈!불끈! 들곤 한다. 밖에서 사먹는 한끼의 외식보다 엄마가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며 엄지를 척! 치켜주는 아이덕에 요리 할 맛이 난다. 날이 갈수록 포동포동 궁둥이 살이 오르는 딸 아이를 보며 열심히 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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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준 밥을 먹고 사는 남매를 보며 ‘엄마가 매끼 챙겨주는 밥’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절히 깨닫는다. 내가 해준 집 밥이 언젠가 아이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밥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못한다. 이유 없이 주눅 드는 어느 날 문득, 건강하게 잘 자라는 남매를 보며 ‘내가 이룬 게 없긴 왜 없어. 이게 바로 내가 십년 간 땀 흘려 키운 가장 큰 성과물이구나. 자신감을 잃지 말자.’ 스스로 위로한다. 매일 해야 할 일을 성실하는 것, 그것만큼 중요하고 어려운 일도 없다. 나의 수고를, 다른 이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겠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투덜거리더라도 치우고, 성실히 밥을 짓는 엄마는 위대하다. 고로 나는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