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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그리고영화

딸에 대하여

 

목은 딸에 대하여지만 실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 어쩌면 여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젠 그리고 화자인 엄마와 딸 그린과 그 애>네 명이 화자인 엄마를 통해 그려진다. 젊은 작가의 글이 참 섬세하다. 심리 묘사는 탁월하고. 이성애자이고 평범한 엄마의 삶을 사는 나는 화자인 엄마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다. 내 딸이 그린이라면 화자인 엄마만큼 이성적이지 못할지도.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며? 다른 게 나쁜 건 아니라며? 그거 다 엄마가 한 말 아냐? 그런 말이 왜 나한테는 항상 예외인 건데? 넌 내 딸이잖아. 넌 내 자식이잖니.”(179) 남에겐 그럴듯하게 이야기하면서 자식이니까, 용납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다.

 

<엄마에 대하여>

자신의 처지에 대해 서글픔이 글 곳곳에 묻어난다. 하나뿐인 딸이 맘같지 않을뿐더러 배울 만큼 배우고 가르칠 만큼 가르쳤건만 엄마가 바라는 평범한 삶을 거부한다. 하소연 들어줄 남편은 곁에 없다. 내 부모가 그렇듯 유일하게 남겨진 의지할 곳은 집 한 채, 집착 뒤에는 자식에게 짐은 되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여러 직업을 거쳐 현재는 요양원에서 젠을 돌본다. 딸이 성 소수자로 사는 것도 시간 강사를 하다 길거리로 내몰린 것도 모두 자기 탓인 양 자책한다. 너무 많은 것을 배우게 한 것은 아닌가. 엄마라면 지당 자기가 무엇을 잘못해서 딸이 이런 삶을 살까, 괴롭다.

 

자신이 유일하게 통제권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낡은 집을 담보로 대출을 요구하는 딸의 말을 흔쾌히 들어줄 수 없다. 가난에 처박히지 않기 위해 돈을 벌고 딸을 독립시킬 돈을 쥐여줄 형편도 아니다. 결국은 같은 공간에 딸과 그 애를 들인다. 그 심정이 오죽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쩔 수 없이 그 애와 함께 살면서 보기 싫은 상황을 직면한다. 보지 않았다면 조금은 나았을까.

 

딸애는 내 삶 속에서 생겨났다. 내 삶 속에서 태어나서 한동안은 조건 없는 호의와 보살핌 속에서 자라난 존재. 그러나 이제는 나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굴고 있다.”(57)

 

<젠에 대하여>

삶은 징그럽도록 길어요. 살다 보면 다 똑같아져요. 죽는 날만 기다리게 된다고요.”(297) 삶의 유한함, 젠을 보며 절감한다. 자식 유무와 상관없이 요양원에서 죽어가는 모습이 무섭다. 젠에게 필요한 부족한 용품을 걱정하는 엄마는 이것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인지 묻는다. 젠이 요양원에서 홀대받으며 죽어가는 일이 결코 남 일이 아니라는 것까지. 쓰레기통에 던져진 화려했던 젊은 날 경력과 스펙은 허무다.  

 

<그린과 그 애에 대하여>

누구나 각자 살고 싶은 삶이 있는 거잖아요.”(209) 부당한 일엔 당당하게 따지고 할 말을 한다. 주눅 들지 않고 할 말을 또박또박하는 캐릭터라 마음에 든다. 각자 살고 싶은 삶을 살도록 최소한 방해는 하지 않을 만큼 세대간을 뛰어넘어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을까그게 자식이든 타인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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