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내게 말한다. 당신 같은 사람이랑 살아서 참 다행이라고. 크는 아이와 감정적으로 격리 개별화 되는 게 참 힘든데 날 보면 참 쿨한 거 같아서 부럽다고. 나도 그렇다. 남편 같은 사람을 보면서 와, 이런 사람도 있구나. 어쩜 이렇게 눈물이 많을까. 얘를 좋아할까. 때로는 끔찍하게 아끼고 생각하는 걸 보면서 부담스럽다. 나는 감히 그러질 못해서. 남편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나를 보면서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냉정해질 수 있을까. 놀라워하겠지. 어떤 면에선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살아서 다행이다.
예를 들면 아들이 친구 집에서 자면 난 속으로 앗싸를 외친다. 남편은 이내 집이 허전하다며 아쉬워한다. 있을 때 잘해줘야 하는데 사춘기 아들을 요즘 많이 구박한 게 아닌가 바로 후회한다. 어릴 적 해맑게 웃는 아이 사진을 보내주며 어릴 때 이렇게 예뻤다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며 사랑스러운 모습을 잊지 말고 같이 살 때 더 많이 사랑해줘야겠다고. 아이가 커버리면 다신 되돌릴 수 없고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라며 애틋해한다.
그런 남편도 12살 사춘기 아들이 전자기기에 빠져서 정신 못 차리는 모습은 보기 힘들어한다. 우리 부부는 요즘 아이의 게임 시간 때문에 종종 싸운다. 아이와 시간을 정했지만 지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 참다 끝내 내가 폭발하고 화내는 나를 남편은 견디기 어려워한다. 이런저런 방법을 써봤지만 역시나 쉽지 않다. 어떤 날은 그래 너 실컷 해라, 집을 나간 적도 있다. 아이가 게임을 많이 하면 난 왜 화가 날까. 생각해보니 부모로서 책임을 과도하게 생각하거나 집착하는 건 아닐까. 그게 아니면 네 인생이니 너 알아서 하라면서 사랑을 철회한다.
나도 인간이니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니 냉정하게 대하게 된다. 아들은 그건 또 싫단다. 엄마가 자기에게 차갑게 대하는 건 원하지 않고 그럼 너의 게임 시간을 방관하길 원하니? 그것도 아니란다. 자기도 많이 하면 좋지만 너무 많이 하면 후회스럽단다. 쾌락도 일정량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통제가 되지 않으니 엄마가 약간(?)의 통제를 해주길 바란단다. 참, 어이가 없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양육자의 의무? 아들의 요지는 이거다. 게임은 충분히 하고 엄마가 자신에 대한 사랑을 철회하지 않는 것, 적당한 관리는 해주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어이 상실이다.
사춘기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을 시엔 사무적으로 대한다. 가끔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봐도 못 본 척, 대신 밥은 준다. 간식도 필요하면 챙겨주고. 기대치를 접으니 훨씬 마음의 평화가 온다. 안 보이는 곳에서 하는 건 그나마 낫다. 친구 집에서 자는 날 새벽 두 시까지 게임을 했다면 그래, 장하구나. 대단하다 하고 만다. 점점 내 품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한다. 아이의 못마땅한 면도 받아들이고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그렇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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