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가 남편에게 일요일에 시간 되면 우리 가족과 함께 커피 마시러 어디라도 가자고 해서 동네 어디서 커피 한 잔 하는 줄 알았는데 한 시간을 달려 쿡스하펜에 다녀왔다. 너무 갑작스럽게 준비도 못했는데 피터가 선글라스를 챙기러 집에 들어간 틈을 타서 과일 도시락과 물통을 잽싸게 챙겼다. 피터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지만 얘들이 함께하면 도시락과 물은 외출 시 필수다. 고속도로에 진입해선 140Km의 속도로 무섭게 달려 시원한 바다가 펼쳐진 쿡스하펜에 닿았다.
피터는 마리타와 두 번 쿡스하펜에 왔단다. 하루는 자전거를 탔고 한 번은 해변가 호텔에 이틀을 묵으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산책을 했다고. 할머니와 함께 간 아이스크림집에 제일 먼저 가서 빙수보다 더 큰 접시로 시켜서 먹었다. 건강 강박증이 있는 나는 이렇게 많은 아이스크림은 도대체 칼로리가 얼마야 생각하느라 마음껏 즐기질 못했다. 한편으론 그래, 바로 이렇게 달콤한 맛이 순간을 즐기기엔 제격이지 싶고. 한 시간도 채 걷지 않고 커피 마시러 카페에 갔다. 나는 케이크는 시키지 않았지만 얘들이 먹는 핫초코와 생크림에 신경이 쓰인다. 그러고 보니 난 아주 잘 즐기는 사람은 못된다. 뜨거운 햇살에도 얼굴 타면 어쩌나 선크림을 충분히 바르지 못했는데 특별히 뭘 어쩌지도 못하면서 에잇, 아쉬워만 한다.
아직 바람이 차고 물은 더 찰 텐데 수영하는 사람도 모래사장에서 선탠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홀딱 벗은 꼬맹이가 모래 웅덩이에서 첨벙거리는 풍경은 귀엽긴 해도 감기 걸릴까 봐 걱정된다.
마리타가 살아있을 때 언젠 한번 Nordsee에 같이 가자고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피터의 눈길이 자주 손잡고 산책하는 노부부를 바라봤다. 피터의 단단하고 넓은 등에 외로운 바람이 느껴진다. 마리타와 함께 한 추억이 깃든 장소를 함께 걸었다. 어느 식당을 지나면서는 저기서 마리타랑 작년 여름에 피자를 먹었다고도 했다. 모래사장에서 어린아이 둘을 등에 매달고 노는 젊은 아빠를 보면서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루 말할 수 없이 속도가 빨라진다고 지금을 잘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인생 선배는 말씀하신다.
'구석구석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0) | 2019.08.04 |
---|---|
[베를린] 숙박 모아 머큐아 (0) | 2019.07.21 |
눈부신 날엔 크눕스 파크 (0) | 2019.05.17 |
[브레멘] 우주 박물관(Universum Science Center) (0) | 2019.05.09 |
[암스테르담] 조명도 아름다웠던! (0) | 2019.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