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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꽃유진/Deutsch

살아있네 살아있어, 독일어

클라우디아와 오랜만에 만났다. 마지막으로 만난 날짜를 찾아보니 6월 마지막 주 화요일이다. 고로 6주 만에 만난 셈이다. 그 시간만큼 내 마음대로 독일어 방학이다. 7월 한 달간 내가 독일어 말한 날을 헤아려 보니 베를린에 가서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주문할 때 필요한 독일어를 했을 뿐이고 길게 대화를 나눈 것은 지난달 마지막 주에 피터와 마리타에게 다녀온 날 그리고 재인이 친구 졸리나가 집에 왔을 때다. 아, 하루는 어학원 친구들을 세 시간 동안 만나 놀았구나. 독일어판 라이온 킹을 보며 샤워링을 받고.

 

그전까지는 매일 단어 하나라도 외우려고 늘 독일어에 대한 긴장 상태였던 것 같다. 긴장 시간이 최대 3년인가. 잊어버려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완전한 방학을 보냈다. 독일어를 내려놓는 동안 스트레스도 당연히 없다. 어느 날은 며칠에 걸쳐 드라마 알함브라의 궁전을 보니 여기가 한국인가 독일인가 헷갈릴 정도였다. 한편으론 이러다 다 까먹는 거 아닌가 살짝 걱정도 되었지만 마음 편하게 보냈다. 푹 쉬면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으니까. 한 번 익힌 건 이 정도 쉰다고 쉽게 까먹지 않기도 할 테고.


그렇게 자발적 방학을 갖다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니 처음엔 말이 턱 막힌다. 배려심 넘치는 클라우디아와 천천히 걸으면서 한 시간 반을 이야기했더니 헤어질 즈음에야 독일어가 원래대로 되살아났다. 한 번 생긴 배짱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서툴러도 찰떡처럼 알아듣는 사람과 일상을 나누니 말이 술술 나온다. 나도 클라우디아도 독일어가 살아나서 다행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언니와 조카가 왔을 때 이 어려운 언어를 하는 내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클라우디아는 휴가 때 남편이랑 노르웨이에 다녀왔다. 웃통까지 벗고 정원일 하다가 나를 보고 성큼 나와서 손을 내민다. 독일인들은 참 악수하는 걸 좋아한다. 외간 남자 손 잡는 건 여전히 어색하고. 게다가 웃통같이 홀라당 벗은 남자니. 아직도 휴가냐니까. 내일이 마지막이란다. 모레부터 다시 출근인데 무려 5주간 여름휴가를 썼단다. 보통 독일 회사 휴가가 일 년에 30일 정도인데 올해 예외적으로 많이 쉬었다고. 클라우디아는 일주일 먼저 출근을 했기에 남편이 요리하고 집안일한다고. 부러운 독일인의 일상이다.

 

노르웨이에 갈 때 덴마크까지 차로 7시간을 가서 거기서 배를 타고 노르웨이에 갔다고 했다. 밤에 타면 다음날 점심때 도착하는 시간 정도 걸리는 거다. 아직도 높은 산에 잔눈이 많이 남아있는 시원한 사진을 보여줬다. 기온이 20도였는데도 눈이 남아있다는 건 그만큼 겨울에 눈이 많이 오고 기온이 높지 않다는 거다. 북유럽답게 물가는 엄청 비싸다고. 외식은 특히 더 그렇지만 마트에서 장보는 것도 독일에 비해 훨씬 비싸단다. 거의 매일 요리를 해 먹었고 딱 두 번 외식을 했단다. 가는 곳마다 사람도 별로 없이 조용해서 너무 좋았다고. 클라우디아도 나처럼 자연을 좋아한다. 조용하고 사람 없는 곳. 그리고 등산을 좋아해서 매일 산을 탔고. 노르웨이가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이니 산, 폭포, 나무, 물 이런 것들이 대부분인가 보다. 핀란드에 호수와 숲이 많은 것처럼. 타인의 여행기를 듣는 재미는 언제나 즐겁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우린 서로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고 공감한다. 내 독일어가 친구 덕분에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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