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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곳보통날

미우나 고우나 내 자식

김나스틱에서 우아하게 스트레칭하고 기분 좋게 집에 오는 길에 딸이 전화를 했다. 바상 사태라며 변기가 넘쳤는데 오빠가 키친타월로 지금 닦고 있는 중이라고. 이게 무슨 또 날벼락이야. 에효, 한숨부터 절로 나온다. 똥물을 뒤집어쓴 느낌이랄까. 한편으로는 그래. 구질구질한 일상이 삭제된 채 우린 모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이태수 교수님의 강의가 떠올랐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똥물을 닦아야 하는 구질구질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어떻게 하면 잘 포장해서 글을 쓸까 고민된다. 뚜껑이 확 열린다. 분명 아들이 핸드폰 게임하면서 제대로 기다리지 않고 성급하게 변기 물을 내려서 발생한 거라 짐작한다. 그 뒤치다꺼리는 엄마인 내가 해야 할 몫이라는 게 열 받는다. 물론 아들은 제 딴엔 열심히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쓴 건 인정한다. 어쩔 수 없이 발생한 부분도 있을 테고.

 

독일 화장실은 한국과 달리 바닥에 하수구가 없다. 돌바닥을 맨발로 다니기 때문에 물로 씻어 내릴 수도 없고 일일이 물기를 닦고 세제 풀어서 여러 번 닦아내야 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 이런 일이다. 유리컵을 깨서 조각이 어디에 튀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똥물이 어디라도 바이러스처럼 옮기면 안 될 테니까. 물론 그냥 치우는 건 아니고 아들한테 엄청 화내면서 왜 이런 지경을 만들었느냐는 둥 화를 엄청 내면서 헉헉 대면서 치운다. 이런 경우에 아이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휴지와 키친타월을 동원해서 치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일어난 거 자체가 짜증스럽다. 다 그놈의 핸드폰 때문에 일어난 일 같아서. 남편이 없는 데 이 더러운 일을 내가 해야 한다는 게 폭발이다. 바나나 똥이라고 좋아할 때가 언제인가 싶게 변기 막히고 넘치게 하는 아들이 영 못마땅하다.

 

지난달 마지막 주 금요일 3시 아들의 발치가 있었다. 교정 중에 뽑아야 하는 이가 있는데 두 달 전에 하나를 뽑았고 나머지 하나가 더 남아있었다. 아랫니 양쪽 어금니가 기울어져서 앞쪽 이가 나오는 걸 방해해서 꼭 뽑아야 하는 건데 이게 보통 뿌리가 깊은 게 아니다. 지난번에도 엄청 고생했다. 뽑으면서 고생 뽑고 나서 부어서 고생 3주 후 베를린에서 재 감염돼서 된통 고생. 그랬던 이를 또 뽑아야 되는 거다. 처음엔 남편이 동행했는데 그때도 장난 아니라고 전했다. 피도 엄청 많이 나서 호수로 빨아들이는데 안쓰럽다고. 아마 내가 같이 같으면 힘들었을 거라고.

 

이번엔 선택의 여지없이 할 수 없이 엄마인 내가 같이 갔다. 가기 전부터 아들도 긴장되는지 여러 번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엄마보다는 아빠가 가는 게 훨씬 마음이 놓이는데 어떻게 휴가라도 내서 아빠가 갈 수 없는지 물었다. 엄마를 그렇게 못 미더워하냐고 지청구를 주니까. 엄마는 너무 호들갑스럽고. 피 보면 겁나 하는 걸 아니까. 엄마가 불안해하면 자기도 좀 그럴 것 같다면서. 나름 합당한 이유를 댔다. 의사도 마취하고 나가면서 어째 아들보다 엄마가 더 겁먹은 거 같다고 딱 알아봤다. 나름 아무렇지도 않으려고 엄청 애썼는데 다 읽히는 모양이다.

 

수술대에 누워서 초록색 수술 천을 얼굴만 내밀고 덮었다. 이빨을 뽑기 시작하면서 들리는 드릴 소리에 귀를 저절로 막아졌고. 아들의 찌푸린 인상엔 절로 고개를 피해졌다. 굵은 호수론 계속 피가 빨아들여지고. 에휴, 초록 천 밑으로 나온 아들의 양 손은 꽉 쥐어진 채 부들부들 떨고 있다. 마취가 덜 되었는지 아파해서 중간에 재 마취를 했다. 보통 공사가 아닌 모양이다. 어금니 한 덩어리가 나오고 뿌리까지 겨우 다 빼냈다. 꼬매기 시작하니 한숨 놓인다. 마취부터 총 걸린 시간은 40분 정도인데 엄청 길게 느껴진다. 끝나고 일어난 아들 얼굴에 땀과 눈물범벅이다. 셔츠도 흠뻑 젖었다. 얼마나 긴장을 했으면.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열두 살 아들이 무섭고 아픈데도 꾹 참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당장 며칠 전에 화낸 게 떠올랐다. 잘해줘야 하는데 잘해줘야지.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참회한다. 아이고 내 새끼. 몸은 나보다 커졌는데 아직도 내가 기억하는 다섯 살 귀여운 모습이 겹쳐지면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시절이 있었는데 까마득한 옛날이 되었다. 아이가 크는 속도를 내가 못 따라간다. 나름의 시차가 생기는 듯하다. 그날 하루, 안쓰러운 마음으로 죽을 끊이고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딱 그다음 날 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마음이 옅어졌다. 한편으론 하루라도 어딘가 싶기도 하고. 미우나 고우나 안쓰러우나 뒤치다꺼리 하나 우린 피할 수 없는 모자지간이란 걸 다시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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