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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곳보통날

남편의 빈자리

이번주엔 생강차까지

 

남편이 출발하고 난 후 저녁 일곱 시 커피 포트에 물을 끓이는데 갑자기 퍽 하더니 전기가 나갔다. 정전이다. 지난번에도 이런 일이 있었을 때 피터가 두꺼비 집에서 스위치 하나를 올리니 바로 불이 들어왔다. 지난번엔 거실만 정전이었는데 이번엔 온 집안이 정전이다. 다행인 건 촛불의 생활화라 이런 순간에도 크게 당황스럽진 않지만 냉장고까지 전기가 안 들어온 건 처음이다. 두꺼비 집 사진을 찍어 보내줬지만 멀리 있는 남편이 해결해 줄 수 없다. 내가 이리저리 스위치를 올려봤지만 도통 뭐가 뭔지 모르겠다. 결국 외출 중인 피터에게 전화를 해서 한 시간 안에 피터가 와 주었다. 우리의 하우스 마에스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두꺼비집의 모든 스위치가 위로 올라간 상태를 만들면 된단다. 다음번에 혼자 해결할 수 있겠다.  

 

새벽 여섯 시 쓰레기 차 지나가는 소리인 줄 알고 깜짝 놀라 일어났다. 오늘은 월요일, 음식물 쓰레기 통을 내놓는 날인데 깜박했다. 다른 쓰레기와 달리 음식물 수거차는 새벽에 온다. 쓰레기 종류별로 요일에 따라 통을 내놓고 들여놓는 일은 남편이 했는데 그것도 이제 내 차지다. 부랴부랴 옷을 걸치고 갈색 음식물 통을 덜덜 소리 내어 끌어 집 앞에 내놓았다. 음식물은 2주에 한 번씩 가져가는데 지난번엔 여행 중이라 걸렀더니만 음식물이 꽉 찼다. 오늘도 놓치면 큰 일이다.   

 

쓰레기 차를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한숨 돌리며 식탁에 앉으니 남편이 주말에 사다 준 잔망스러운 노란 국화만 식탁 위에 덩그러니 남았다. 일요일 오후 세시 즈음엔 남편은 다른 도시로 떠난다. 주중엔 슈토프라는 도시에서 혼자 살다가 금요일 저녁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한 지 벌써 석 달째. 남편은 새로운 일터에서 적응하느라 애쓰고 나는 매주 왔다가는 손님을 치르느라 애쓴다. 가을 방학에 남편이 사는 곳에 갔다 와보니 그 먼 거리를 다닌 게 대단할 뿐 아니라 아무 불평도 하지 않았다는 건 더 놀랍고 미안한 일이다.

 

그것도 모르고 난 매주 손님 치르느라 힘들다고 짜증도 더러 부렸다. 주중엔 독박 육아에 살림도 도맡을 뿐 아니라 주말엔 주중에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 밀린 요리를 너무 열심히 하느라 남편이 가고 난 다음엔 넉다운이다. 남편이 주말마다 오가는 길이 보통 힘든 게 아니란 걸  알고 난 다음엔 뭐라도 더 챙기느라 에너지를 넘치게 쓴다. 주말에라도 한식을 든든하게 먹이려고 매끼 신경 써서 요리를 하고 가는 기차 안에서 먹을 샌드위치와 밑반찬까지 싸주려다 보니 장도 여러 번 본다. 게다가 직접 배낭에 넣어 나르느라 더 힘들다. 미련하다. 자전거를 진작 배웠으면 되었을 것을. 틈틈이 자전거 연습을 해야겠다.    

 

힘들긴 해도 남편이 고마워하니 됐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먹이고 싸주어야 후회가 덜하다. 물론 육체적 피곤함의 부작용이 얘들에게 가는 것도 있지만. 주말부부의 단점은 생각보다 많다. 한 부모의 부재 속에 일주일을 지내야 하니 얘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고 혼자 남은 그 한부모도 쉽지 않다. 가끔 엄마가 힘들면 아빠가 커버를 해주기도 하고 그 반대로 함께 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데 그걸 혼자 하려니 힘에 부친다. 남편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크다. 아니라지만 힘이 빠지는 건 사실이다. 남편이 떠나는 일요일 오후엔 기분이 가라앉고 남편이 돌아오는 금요일엔 들뜬다. 그건 오누이도 마찬가지다. 벌써 목소리부터 달라진다. 그걸 얘들이 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함께 있는 동안의 시간을 귀하게 여기고 촘촘하게 쓴다는 점이다. 시간이 없다고 생각될 때 더 많은 일을 처리하게 되는 아이러니처럼. 함께 있는 시간의 유한함을 깨달으면 허투루 보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