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보내는 겨울 방학은 유독 어둡고 길게 느껴진다. 근검절약하는 독일인도 그동안 아낀 전기를 다 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12월 한 달 동안 집집마다 화려한 불빛이 넘친다. 어둡고 긴 겨울밤을 낭만적으로 보내기에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중요해 보인다. 대부분이 부모님을 찾아가거나 오랫동안 못 본 가족을 만나 식사를 함께 하며 선물을 교환하고 안부를 전하겠지. 우리는 방문할 가족도 없으니 여행이 필요하다. 조촐하지만 마니또 게임으로 선물은 교환했다. 아무튼 성탄절에 괜히 적적하지 않으려면 여행지에서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크리스마스 전날 아침에 집을 나섰다. 이웃 동네 네덜란드로 가는 9시 기차를 타러.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은 아니지만 여행은 설레는 이름이다. 무엇보다 집안일에서 해방될 수 있는 호텔에서 며칠이나마 보낼 생각에. 가족 한 사람당 차지하는 면적이 현저하게 좁아지니 피로감은 높아지는 게 함정. 단 며칠이니 감수해야 할 부분. 그동안 경험으론 가족이 묵기엔 노보텔이 괜찮았는데 남매 매트가 바로 옆, 스키폴 공항 근처의 이번 방은 좁아도 너무 좁았다. 딸은 호텔은 자기를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며 어디든 집 떠나면 신나 하지만. 욕조가 구비되어 있는 장점 말고는 후한 점수를 주긴 어렵겠다. 조식 먹는 식당은 넓고 조명이 은은해서 분위기는 좋았고 분비지 않고 음식은 독일과 비슷한 구성이다. 아, 로비에 애들이 놀만한 키카가 있어서 남매는 좋아했다. 마지막 날엔 외국 사는 한국인 아이를 만났는데 엄청 좋아하고 헤어지는 걸 아쉬워했고. 한국인에 목마른가? 조만간 한국에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해산물에 굶주린 우리는 크리스마스엔 The Seefood bar에서 근사한 점심을 먹었다. 현지인이 추천해 준 식당인데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걸맞게 음식도 맛있었다. 해산물이라고 하기엔 감질났지만. 사실 제일 맛있었던 건 공항 안에 있는 마트에서 파는 초밥 도시락. 오가는 길에 두 번이나 먹었는데 옆에서 바로 만들어서 싱싱하다. 마지막 날 밤에 다시 찾은 일본 식당에서 먹은 튀김 가락국수가 일품이다. 영화 <심야 식당>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로 중앙역 근처 뒷골목에 있다. 두 번째라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약간 헤맸지만 문 닫지 않고 그대로 있어서 어찌나 반갑던지. 심야 식당과 달리 주인이 여성이지만 작년에 오고 두 번째라니 내년에 또 만나자는 인사가 괜스레 찡하다.
레지코 박물관 앞 아이스 스케이트 장엔 사람이 북적북적. 고흐와 레지코 박물관은 작년에 갔으니 패스, 안네 프랑크의 집은 가고 싶었는데 나머지 식구들은 심드렁해서 그것도 패스, 하긴 예약도 미리 안 해서 티켓 구하기도 어려웠지만. 암스테르담에서 핫하다는 The 9 street를 어슬렁어슬렁 구경하고 사진 찍고 한가로이 거닐었다. 달달한 디저트도 먹으면서. 뜨겁게 먹으면 더 맛난 와플로 알고 보니 네덜란드에서 유명한 과자였다. 독일 마트에서도 살 수 있는 캐러멜 와플인데 직접 구운 걸 먹으니 색다르다. 와플 사이에 들어있는 캐러멜이 늘어나는 걸 호호 불어가며 먹는다. 자기 취향에 따라 와플 위에 더 달달한 것들을 추가로 주문해서. 아기 얼굴만 한 와플 하나에 5 유로가 넘어서 기겁했는데 한 번쯤은 먹어볼 만하다. 콘세르트 게 바흐에서 들은 헨델의 메시아로 충만했던 암스테르담 여행. 가족이 모두 무탈하고 함께 있을 수 있어서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유럽에서 네 번째 겨울을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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