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모두 단순한 기쁨이 주는 안락함을 찾게 된다. 동료애와 우정, 규칙적인 일상, 맛있는 음식, 얼굴에 와 닿는 햇살의 온기 같은 것 말이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성취하고 축적하는 것보다 단순히 존재하는 것에서 얻는 행복감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p447)
가까이에 존재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노화를 거쳐 죽음에 닿는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며 자동으로 떠오른 사람은 당연히 마리타다. 작년 3월 11일, 큰 수술 날짜가 잡혔던 마리타가 3월 1일 내 생일이라고 선물을 챙겨주셨다. 병원에 다녀온 그녀는 다리가 퉁퉁 부어서 걷기 힘든 상태였고 자신의 집으로 내려와 달라고 했다.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했는데 그 무렵 남편은 직장을 찾는 중이고 할머니는 큰 수술이 잘 되길 응원하며 헤어졌다.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믿기지 않지만 바로 그 달 마지막 날에 마리타가 죽었고 다신 돌아오지 못했다.
여름에 태어난 마리타의 일흔여덟 살 생일에 선물로 받은 분홍 장미가 정원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마리타가 죽고 두 달 뒤 첫 꽃을 피운 장미를 마리타는 영영 보지 못했다. 독일에 처음 살게 집 안주인 마리타.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은 4년 전 여름, 우리 가족이 브레멘 공항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 날 아침 피터와 각자 차를 몰고 데리러 왔을 때다. 화장을 곱게 하고 옷매무새가 깔끔할 뿐 아니라 운전도 터프하게 해서 칠십 중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3년간 위아래층으로 같은 집에 살면서 만난 그녀는 나보다 몇 배는 부지런하시고 깔끔하셨다. 나이 들면 저렇게 살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자신이 매일 머무는 공간인 집은 늘 정갈하고. 꽃과 나무가 적당하게 자리 잡은 정원을 예쁘게 가꾸고 새가 먹을 모이와 물을 채워 넣어 매일 아침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누렸다. 한 달에 한 번 염색을 했고 외출 시엔 곱게 화장하셨다. 본인의 생일엔 사과케이크를 직접 만들어서 식구수대로 나눠주시고, 세입자 가족의 생일과 크리스마스 선물은 세련되게 챙겼다.
그래, 내가 완벽하게 꿈꾸던 할머니의 모습. 간섭은 하지 않되 필요한 것은 알아서 척척 챙기는 너그러운 면도 이상적이다. 우리가 이사한 해 가을엔 터키로 피터와 일주일간 여행을 떠나서 부러웠다. 그다음 해 휴가지에서 갑자기 병원에 갔었고 다행히 아무 일 없다는 듯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 후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점점 이상한 징후가 시작되었다. 잘 회복하셨다 싶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예전의 건강한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걷는 모습이 부자연스럽고.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모습이 포착되었다. 처음 모습과는 천차만별로 마지막 1년 동안 급속도로 쇠락하는 모습은 과연 넝쿨이 자라는 속도감이다.
마리타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등장한 라자로프 사례처럼 다리가 붓고 폐에 물이 차는 등 심각한 상태로 치달아 결국 수술 날짜를 잡았다. 78세 할머니가 수술 후 스무 날도 채 되기 전에 돌아가셨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열 시간이나 되는 힘든 수술을 괜히 했지 후회했다.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돌아오고 싶었던 집에 오지 못했다. 분명 수술을 결정할 땐 한 두 달을 염두에 두진 않았을 거다. 물이 차면서 생기는 고통을 제거하고 최소 몇 년 이상은 건강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런 순간에 의학적인 도움을 어디까지 받아야 할 것인가. 어려운 결정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피터가 허둥지둥 차를 몰고 가던 날 밤의 불길한 예감이 생생하다. 마지막 순간에 할머니가 전한 말들. 자신이 없더라도 지금처럼 정원을 잘 가꾸면서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씀. 세입자인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주라고 부탁하셨다는 감동적인 유언. 실제로 피터는 우리가 어려운 순간에 슈퍼맨처럼 도와주었다. 집에 돌아오지 못하시고 병원에서 숨을 거두신 게 안타깝지만 가장 소중한 사람 딸과 피터에게 마지막 인사는 하고 떠나셨다.
습관적으로 독일 신문의 부고란을 살핀다. 세상을 이제 막 작별한 이들의 출생연도를 확인한다. 간혹 눈에 띄는 젊은이는 외면하고 36년 41년 출생인 분 위주로. 80대에 사망하신 분들. 얼마 전 돌아가신 친구의 어머님도 83세. 난 그 나이까지 살 수 있을까. 감히 닿지 못할 것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만약 그 때까지 산다면 이제 40년 남았다. 지금까지 산 시간만큼 과연 더 살 수 있을까.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마리타처럼 병원에서 무서운 수술을 열 시간이나 받고 난 후에 급속도로 죽음을 향해 돌진하고 싶진 않다. 할머니도 육체적 고통 앞에서 의학적인 도움을 외면하긴 어려웠을 거다. 수술만 받으면 당연히 거뜬히 몇 년은 살게 되리라는 희망으로 그 어려운 수술을 선택했을 테지. 이렇게 급격하게 허물어질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와 동일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후회 없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정신은 잃지 않고 혼자서 화장실은 갈 정도까지만 살고 싶다. 죽는 순간에 게라심(이반 일리치에 나오는, 충직한 사람) 같은 사람이 곁을 지키며 죽는 게 덜 무섭게 손을 잡아주면 좋겠다. 아마도 그런 사람은 남편이지 싶다. 당신이 사는 동안 보여준 변함없는 사랑과 인내에 고마웠다고. 장성한 딸과 아들에게도 마지막 인사는 충분히 하게 되기를. 고맙고 미안했다고. 나 없어도 조금만 울고 담담하게 살아가라고. 너희의 엄마로 살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엄마가 수시로 그립겠지만 그래도 너희 삶의 빛나는 순간을 만나라고. 갑작스럽게 죽지 않고 삶의 마지막을 정돈할 몇 시간은 주어지기를. 내 자식들이 자주 들여다볼 수 있는 곳에 묻히길.
“심각한 질병을 갖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고통을 피하고, 가족 및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고, 주변과 상황을 자각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잃지 않고,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고, 자신의 삶이 완결됐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p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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