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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그리고영화

천국과 지옥을 가르고 뇌도 반응하는 돈

영화 [국가 부도의 날]과 EBS 다큐프라임 [뇌로 보는 인간-돈]을 보고

 

 

1997년 IMF, 대학교 3학년 때다. 금 모금에 보탤 금은 없었지만 타이타닉호라는 어머어마한 영화가 개봉했을 때인데 외화라도 보지 말자는 분위기엔 동참했다. 한국이 위기 상황이라는 건 경제를 몰라도 직감했다. 그 이듬해 졸업할 땐 취업률이 현저하게 낮았고 탐탁잖게 여기던 전공인 유전공학과 대학원 진학을 고려할 정도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공 학점이 별로라 지도교수가 적극 추천했음에도 불구하고 진학은 못했다. 대신 아산 국립중앙병원 연구원으로 취업, 첫 사회생활이 시작됐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은 한국의 IMF 사태를 각자 다른 입장에 처한 주인공을 내세워 리얼하게 보여준다. 위기 상황을 공유하지 않고 거짓말하는 매스컴만 철석같이 믿는 순진한 중소업체 사장 허준호! 정의를 추구하지만 힘없는 시민이자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직원 김혜수. 사리에 밝고 돈의 흐름을 꿰뚫는 금융맨 유아인. 유아인은 라디오에서 남편이 실직을 했다는 등 회사가 부도났다는 등 여기저기서 어렵다는 사연에서 가계 부채의 심각성을 직감하고 위기 상황을 어떻게 기회로 만들지 영민하게 머리를 굴린다. 기업이 줄줄이 망하고 국가 부도 상황에 고위 관리자가 어떤 처신을 할지까지 예상한다. 그리고 자산을 모두 기준 채권인 달러로 바꾸어 보유하고 싼 가격으로 매물이 쏟아지는 강남의 아파트를 사들이며 위기를 절호의 찬스로 전환한다.

 

세계 3대 투자가 짐 로저스는 현재 국가별 부채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세계적인 위기가 온다면 아마도 과거의 어느 때보다 큰 수준으로 올 거라고 예측한다. 자신은 고리타분한 시골 사람이라서 여전히 은과 금에 투자하는데 그중에서도 50%나 하락한 은이 훨씬 매력적이란다. 위기의 순간엔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거라면서. 가장 손쉽게 현금화할 수 있으며 전 세계에서 통용 수단이자 안전 자산이 금이다. 1997년 국가 부도 사태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금 약 227톤으로 2조 5천억 원은 기업의 부채를 갚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위기의 순간에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준 일화다. *각국 정부는 여전히 중앙은행에 금 보유, 미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은 외환 보유고의 60~70%를 금으로 채운다. 그만큼 실물자산인 금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EBS 다큐프라임 뇌로 보는 인간 [돈]에서는 돈이 인간 뇌에 미치는 영향과 전 세계 현저한 빈부 격차 그리고 불평등이 왜 사회적인 문제를 초래하는지 다양한 국가의 사례와 경제학자의 의견을 듣는다. 인간의 뇌는 식욕과 성욕처럼 돈이 생존에 꼭 필요한 것으로 인식한다. 추수 전후의 농부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추수하기 전보다 추수로 많은 돈을 벌게 된 농부의 논리력과 인지 조절 능력이 높아지고 아이큐도 13(이 수치는 알코올 중독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만큼 크다)이나 높았다. 우리 뇌는 돈을 좋아할 뿐 아니라 돈에 꽤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돈이 없거나 가난했을 때 여유롭지 못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걸 보면 이해하기 쉽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돈을 많이 가질수록 공감능력이 떨어지며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을 돌아보지 못하는 슈퍼리치들을 조사했다. 전 세계 슈퍼리치 9%가 세계의 부 43.9%를 소유한다는 통계는 놀랄일도 아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점점 더 크게 벌어진다. 교통 법규를 지키는 차량과 그렇지 않은 차량을 관찰했더니만 비싸고 큰 차를 소유한 사람일수록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 이 연구가 의미하는 바는 부와 특권을 가진 사람이 규칙을 무시할 확률이 높다는 거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평등을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고 분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소득보다 자본소득이 높은 사람이 훨씬 부자가 될 확률이 높고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불평등 간격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산다.

 

OECD 국가 중 불평등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홍콩, 돈 있는 사람에겐 천국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지옥이란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그건 꼭 홍콩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거다. 화려하고 럭셔리한 뒷면엔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만큼 인간이 느끼는 체감으로 천국과 지옥을 가를 만큼 중요한 게 돈이라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돈이 많다고 행복지수가 현저하게 높지 않다 것도 안다. 일정 수준 이상에선 돈에 대해서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금세 적응된다. 돈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말되 돈만 좇느라 중요한 걸 노치는 우도 범하진 말아야 한다. 게다가 행복한 찰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물질적인 소유보다 경험이 행복지수를 높인다는 건 그만큼 관계가 주는 기쁨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단 일정 수준 돈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IMF 사태를 힘겹게 겪은 영화 속 김혜수는 말한다. 첫째, 모든 것을 의심하고 둘째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셋째, 늘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으라고. 이 두 개의 영상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자본 수입을 늘리고 돈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서 행복한 삶을 추구할 지 고민하게 만든다.

 

(*김성일의 마법의 돈 굴리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