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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오늘도

사랑은 철회하지 않으면서 남편은 내게 말한다. 당신 같은 사람이랑 살아서 참 다행이라고. 크는 아이와 감정적으로 격리 개별화 되는 게 참 힘든데 날 보면 참 쿨한 거 같아서 부럽다고. 나도 그렇다. 남편 같은 사람을 보면서 와, 이런 사람도 있구나. 어쩜 이렇게 눈물이 많을까. 얘를 좋아할까. 때로는 끔찍하게 아끼고 생각하는 걸 보면서 부담스럽다. 나는 감히 그러질 못해서. 남편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나를 보면서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냉정해질 수 있을까. 놀라워하겠지. 어떤 면에선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살아서 다행이다. 예를 들면 아들이 친구 집에서 자면 난 속으로 앗싸를 외친다. 남편은 이내 집이 허전하다며 아쉬워한다. 있을 때 잘해줘야 하는데 사춘기 아들을 요즘 많이 구박한 게 아닌가 바로 후회한다. 어릴 적 해.. 더보기
짜증 한 바가지에 배부른 날 아이는 쉽게 내게 짜증 낸다. 짜증도 유전인가. 나도 좀 신경질적이고 한 짜증 부리지만. 아무 때나 짜증 한 바가지씩 부려도 받아줄 엄마가 내게도 있었으면 참 좋겠다. 짜증 받아준 경험이 없어서 그런가 아이가 부리는 짜증을 잘 받아주는 엄마는 아니다. 뭐든 다 받아주는 존재가 엄마는 아닐 테지만. 아무리 신경질 부려도 버림받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분명 든든한 일이다. 눈치 별로 보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아이가 부럽다. 초등학교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가 엄마에게 별일도 아닌 일로 심하게 짜증부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신기하고 부럽던 기억이 난다. 아이가 아무리 짜증을 부려도 오냐오냐 하고 받아주던 친구 엄마들! 참! 이상하고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자.. 더보기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풍날 엄마가 되면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 몇 가지 있다. 비 오는 날, 우산 들고 학교 앞으로 나가 내 아이를 멀리서도 기가 막히게 짠! 하고 제일 먼저 찾아내고 반가워하는 아이와 한 우산을 쓰고 오순도순 집으로 오는 거다. 또 하나는 소풍날엔 엄마 표 도시락으로 꾹꾹 눌러 싼 김밥으로 자랑스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마침 그런 날이 왔다. 솜씨를 발휘할 날이! 엄마 살이 십 년 차가 되어도 여전히 뭔가 어설프다. 김밥 싸는 일도 그 중 하나다. 자신 없는 만큼 자주 해먹지 않았고 김밥 집에서 사다 먹거나 직접 김에 모든 재료를 넣고 스스로 싸먹는 맛끼를 선호한다. 걱정되는 마음에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시간이 촉박해서 허둥대지 않게 전날 모든 재료를 나름 완벽하게 준비했다. 인터넷에서 김밥 터지지 않고 잘 싸.. 더보기
황금 똥 찍던 엽기 엄마 열 살 아들은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난 후, 화장실 사용 불가라며 코를 막으며 나온다. 배변 훈련할 적만 해도 “어쩜 넌 똥도 예쁘냐”고 열광했던 내가 냄새 지독하다고 어서 화장실 창문 활짝 열라고 난리 칠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사랑은 변한다. 이젠 변기가 막힐 걱정할 만큼 아이가 컸고 황금 똥에 호들갑스럽게 반응했던 엄마는 사진 찍어서 아빠에게 전송한 날이 까마득한 옛일이다. 얘들아, 엄마가 얼마나 엽기적이었는지 알아? 네가 기저귀 떼고 처음으로 변기에 앉아 바나나 똥 성공했을 때 아빠한테 사진 찍어서 보냈다니까. 마침 아빠가 그때 회사에서 점심 식사 시간이었는데 그 사진 보고 황당해서 어쩔 줄을 모르셨대. 엄마보고 어떻게 밥 먹을 시간에 똥 사진을 보냈냐며 엄청 웃으셨어. 물론 일부러 식사 시간.. 더보기
엄마 반성문 엄마 반성문/밥만 해주는 게 아니고 욕도 먹인다. 엄마와 사별로 ‘엄마’라는 호칭조차 낯설게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이 나의 숙명인 것처럼 내 아이에게 나 같은 엄마와 같이 사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엄마일까. 감정 기복이 심하다. 최상주의자이면서 욕심이 많다. 불행을 행복보다 쉽게 느낀다. 다혈질에 화를 잘 낸다. 등등 부정적인 측면은 무수히 많고 글감은 넘친다. 요 며칠 화가 잦다. 화의 근원을 파고들면 결국 내 문제다. 아이들이 만든 상황은 그저 수면 밑에 있던 내 화를 건드렸을 뿐이다. 화 난 일 두 가지를 살펴봤다. 일학년이 된 재인이 학교 선생님과 상담이 있는 날이다. 남편과 같이 선생님을 만나 20분간 상담을 했고, 나는 바로 김나스틱 하러 체육관에 갔다. 남편도 저.. 더보기
꽤 유용한 'Start' 버튼 쓰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지만 마감이 있어서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니니 쉽게 다른 일에 밀린다. ‘Must’로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내 만족을 위해 꼭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다. 그동안 쓰던 원고는 올해 안에 독립 출판으로 마무리를 하려고 계획했지만 의기소침해지는 날이 더 많아 손이 안 간다. 어떤 날은 이런저런 핑계가 생기기 쉽다. 역시나 나와의 싸움이 가장 크다. 나와 약속은 지키고 싶어 타이머를 설치하고 나를 글 속으로 밀어 넣는다. 하루에 최소 59분은 원고에 집중하는 거로 타협을 했다. 어느 정도 마음이 잡히면 무조건 ‘Start’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집중 모드로 간다. 초침이 빠르게 움직이는 만큼 나의 집중력도 높아진다. 타이머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할 때도 쓴.. 더보기
쉿! 비밀이야. 보물찾기 남편은 밖에 나가면 나와 애들이 보고 싶다며 수시로 전화를 한다. 어느 날은 뜬금없이 딸을 바꿔 달란다. 딸과 통화를 하고 엄마를 바꿔 주길래. 남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만 딸과 비밀이란다. 아하, 딸과 아빠의 비밀이라. 뭔가 궁금했지만 궁금하지 않은 척했다. 남편보단 딸에게 비밀을 캐기가 빠를 것 같아서 슬그머니 묻는다. "딸, 아빠하고 무슨 비밀 이야기했어?" "응 비밀이야." "아, 그래?(서운하지 않은 척) 비밀이 있는 것도 좋은 일이지. 그리고 비밀도 약속처럼 지키는 게 좋고." 옆에 있던 오빠는 "재인아,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건데. 오빠한테만 말해주라" 면서 엄청 궁금해한다. 우리 집에서 남편은 인기가 많다. 오누이에게 아빠가 좋은 이유를 물으면 대번에 잘 놀아줘서 좋단다. 나도 남편처럼.. 더보기
문자보다 감수성(당근 할아버지) 독일에서 1학년을 다니는 딸이 M(므)와 A(아)를 배우고 두 문자를 결합해서 ma(마)가 된다는 것을 배우더니 ‘mama’를 쓰고 읽는다. 외국에 살면서 모국어를 습득하는 일은 중요해서 한국이었다면 내려놓았을 한글 가르치는 일에 에너지를 쏟으며 혈압이 상승하고 뒷목을 잡았던 적이 잠깐 있었다. 그때 아이는 독일 유치원에선 친구 중에 글을 읽는 아이는 없다면서 학교에 입학하면 한글도 배우겠다며 엄마를 말렸다. 학교에 들어가면 숫자와 문자를 기초부터 배우는 독일에서도 당연히 학교 입학 전에 문자 학습을 시키지 않는다. 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우는 진도에 따라 한글의 모음과 자음을 가르치니 훨씬 편하다. 한글도 ‘ㅁ’ ‘아’가 결합해서 ‘마’가 된다는 것을 아이는 쉽게 이해했다. 아이가 글을 배우는 일은 아이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