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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꽃유진/life in Schwanewede

다니 친구 가비 발마사지 첫날은 기차도 말썽 집에 두고 온 남매가 연락이 안 돼서 걱정했고 밤 열한 시에 귀가하느라 고생스러웠다. 그런데 두 번째 수업부터는 엄청 편하게 집에 왔다. 총 세 시간 수업 중에 한 시간 반은 이론을 듣고 나머지는 실습이다. 두 명이 짝을 지어 그날 배운 마사지를 교대로 해주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두 번째 수업 때 내 파트너는 간호사인 가비였다. 발이 나보다 차갑고 척추 부분을 만져주었을 때 뭉침이 있었다. 가비를 먼저 해주고 다음에 내가 받았는데 엄청 꼼꼼하게 잘해주었다. 마지막 로션까지 부드럽게 발라주면서. 끝날 시간이 가까워오니 난 기차 시간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서두르는 내 모습을 읽고는 선생도 그렇고 어디 사냐고 물어서 슈바니베데에 산다고 하니 가비가 안다면서 자기 집도 그리.. 더보기
예고 없이 들이 닥치는 검표원 독일은 버스나 트램을 탈 때 표 검사를 하지 않는다. 기차도 마찬가지고. 대신 불쑥 예고 없이 검표원이 들이닥쳐 랜덤으로 검사한다. 그때 티켓이 없어서 걸리면 벌금이 60유로다. 버스의 경우 표 살 사람만 앞으로 타서 사면 되니 뒷문을 주로 이용하니 혼잡은 피할 수 있다. 신기한 건 그래도 티켓이 없어서 걸리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거다. 도덕성을 자발적으로 장착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더 바람직한 건지. 아니면 매번 검사를 해서 도덕성이 낮아질 틈이 없도록 관리하는 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이런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검표원이 들이닥치는 걸 보고 정차했을 시 도망치는 사람도 봤다. 어느 날은 검표원이 일반인 복장으로 탔다가 차가 출발하고 검사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엔 이런 .. 더보기
평화로운 날들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한 날들이다. 이유가 뭘까. 욕심이나 조급함 같은 것들이 많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특별히 좋은 일이 있거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거절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노동이든 가리지 않고 할 마음의 준비는 갖췄다. 휴가 가기 전에 인터뷰 본 곳에서 8월부터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결국은 연락이 없다. 요양원에서 아침식사를 침실에 배달하고 치우는 일인데 그 일을 시도해보기로 결심하기까지 마음의 준비가 꽤 들었다. 나름 용기를 내서 6월 중순에 독일어로 인터뷰를 무사히 봤고 일을 하게 되면 8월부터라 더니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 성사되지 않을 모양이다. 그렇다고 지난번만큼 상심스러운 것도 아니다. 한편으론 하지 않게 되어 다행인 면도 있다. 지금 하던 대로 .. 더보기
찰랑찰랑 흘러넘치는 모국어 큰언니와 조카가 드디어 우리 집에 왔다. 오늘이 벌써 이틀 밤을 잤네. 한국은 폭염이 시작되었다는데 우리 동네는 아침 기온 12도에 낮 기온도 최대 20도다. 덕분에 너무 서늘하다 못해 추워서 한국의 더위와 독일 날씨의 간격을 절감했다. 어젠 브레멘 구경에 나섰는데 비도 내렸다. 바람 불고 추워서 바람 잠바가 꼭 필요했고 전형적인 독일 날씨를 경험했다. 일주일 전만 해도 30도였는데 그사이 날씨가 변덕을 부린다. 딸과 함께 이모 오기 전 백일부터 날짜를 세었는데 날 잡아두니 시간이 또 금방 가서 그날이 온 거다. 오누이도 이모가 브레멘 공항에 도착하는 일요일 오전 9시에도 믿기지 않는다는 둥 꿈만 갔다고 했는데 기쁨의 상봉을 했다. 언니가 봄에 직접 캐서 만든 쑥절편은 쑥 향이 그윽할 뿐 아니라 쫀득 쫀.. 더보기
흰 장미와 홀룬더블루텐젤리(Holunderblütengelee) 작년 여름 7월 14일 마리타가 생일에 댄스 동호회에서 선물로 받았다는 흰색 장미가 정원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것도 하얀 자태를 도도하게 드러내며. 마리타가 부엌 창으로 보면 바로 보이는 곳에 딱 심었는데 처음으로 핀 장미를 보지 못하고 떠났다. 마리타 대신 매일 들여다보고 향을 맡으며 예쁘다 쓰다듬는다. 마리타가 봤으면 참 좋아했을 텐데 중얼거리면서. 클라우디아가 이름도 어려운 젤리를 직접 만들어서 선물로 주었다. 지난주 산책하면서 이걸 만드는 데 필요한 꽃을 같이 땄는데 그 꽃이 홀룬더(Holuder)다. 요거트나 빵에 빨라 먹으면 맛있다고 했는데 진짜 상큼하니 빵맛을 돋웠다. 잼보다는 훨씬 밀도가 낮고 흐물흐물한 게 젤리 농도다. 찾아보니 이 이름으로 된 차도 있다. 이맘때쯤 작은 흰색 꽃이 오밀.. 더보기
선박으로 보내 온 택배 1월 29일에 한국에서 선박으로 보낸 택배가 드디어 도착했다. 근 두 달 반 만이다. 우체국에서 보낼 때 빠르면 한 달이지만 최대 세 달까지 걸릴 수 있다더니 날짜를 꽉꽉 채워서 왔다. 솔직히 때 되면 오겠지 싶어 잊고 있었다. 오누이는 도대체 언제 택배가 오냐면서 오매불망 기다렸지만. 그전에 일단 Zollamt에서 편지를 받았다. EU에서 생산되지 않는 물품이 확인되었다면서 일정 수수료를 내고 찾아가라는! 14일 안에 찾아가지 않으면 다시 돌려보내겠노라는 무시무시한 협박까지. 이번엔 아이들 책이 대부분이라 오래 걸리더라도 항공보다 저렴한 배편을 택했다. 한 박스 당 최대 20킬로그램까지 보낼 수 있는데 이번엔 18kg으로 요금은 74000원이다. 5킬로그램을 항공으로 보낼 때 비용과 맞먹는다. 다행히 .. 더보기
누군가에겐 슬픈 봄 독일은 3월 21일부터 봄이다. 칼로 물 베듯이 날짜를 딱 정할 수 있나? 싶었는데, 이런 생각이 무색하게 정말 봄처럼 낮 기온이 18도까지 올랐다. 하얀 분홍 노랑이 꽃들이 한 날 약속이라도 한 듯이 순식간에 피어 올라 봄 분위기를 물씬 낸다. 나무는 겨우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겹게 꽃 피울 준비를 했을텐데 그건 보이지 않고 순식간에 핀 꽃만 보인다. 이문세의 봄바람을 무한반복으로 들었다. 마리타가 정원에 심어둔 구근 식물인 이름 모를 꽃들도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이렇게 환한 봄에 마리타는 병원에 있다. 지난주 10시간의 수술을 했고 지금은 경과를 지켜보는 중이다. 당연히 78세의 연세에 그렇게 심각한 수술을 하고서도 괜찮으리라는 건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수술 당일 날, 살 확률이 50대 50일만큼.. 더보기
도시락 높이만큼 쌓이는 자괴감 10분 후 알람 버튼을 두 번이나 누르고서야 겨우 찌뿌둥한 몸을 일으킨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손을 씻으면서 물이 차갑다고 느낄 틈도 없게 잽싸게 세수하고 부엌으로 간다. 밤새 내린 빗방울이 뿌옇게 맺힌 창문으로 아침이 조금씩 밝아온다. 썰렁한 공기에 얼른 조끼를 걸친다. 성냥으로 초에 불을 켠다. 포트에 물을 받으면서 보니 어젯밤 씻으려고 넣어 둔 세 개의 사과와 당근 두 개가 그대로 물에 잠겨있다. 과일 도시락을 싼다는 걸 깜박한 거다. 20분이나 늦게 일어났으니 서둘러야겠다. 포트에 물은 끓는데 커피 내릴 시간은 없겠다. 싱크대에 선 채로 사과를 반으로 자르고 사분의 일로 잘라 씨만 뺀다. 당근도 깎아 도시락에 차곡차곡 넣는다. 식구수대로 도시락을 싸야 하는 날이다. 빵까지 싸려면 개수는 배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