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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일상

행복한 순간은 대단한 날은 아니고 알츠하이머에 걸려 아들도 못 알아보는 엄마, 김혜자에게 안내상은 묻는다. “살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하셨어요?” 느리게 대답한다. “대단한 날은 아니고 나는 그냥 그런 날이 행복했어요. 동네에서 다 밥 짓는 냄새가 나면 나도 솥에 밥을 안치고 그때 한참 아장아장 걷는 우리 아들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가요. 그럼 그때 저 멀리서부터 노을이 져요” 하늘이 온통 오렌지빛으로 물드는 저녁, 젊은 날 아들의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와 퇴근한 남편을 만나는 장면이다. 팔 벌린 아빠에게 달려가는 아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아내 그리고 아이를 안은 남편과 아내가 함께 지는 노을을 바라보는 모습, 과거를 회상하다 현재로 돌아와 김혜자는 담담하게 중얼거린다.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드라마 의 감동적인 부분이다... 더보기
독일스럽게 읽고 말하기 딸에게 삐삐롱 스타킹을 잠자기 전에 조금씩 읽어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한 적이 있다. 린드그렌은 워낙 유명하니까. 친구는 그걸 기억했다가 이렇게 예쁜 색감의 아스트린드 린드그렌 책(Erzählungen)을 내게 선물했다. 책 좋아하는 나한테 딱 적합한 선물이다. 내 독일어를 응원하는 친구의 마음이 느껴진다. 매일 조금씩 소리 내서 읽는 중이다. 따뜻한 그림이 곁들여져 어른인 나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한국어론 라는 제목으로 나온 단편 모음집이다. 삐삐롱 스타킹은 아직 다 읽어주지 못했다. 읽어주면서도 종종 알아듣는지 묻는데 엄마가 읽어주는 걸 딸이 알아만 들어도 황송하다. 낭독이 그나마 발음이 나아지는데 도움이 어느 정도는 되는 모양이다. 독일어엔 정말 생전 내보지 않은 발음이 많다. 전혀 어울리.. 더보기
뻔뻔하게 다시 시작하기 2월달은 수업에 가기 싫어서 매일 지각했다. B1 코스를 시작하면서 40일 중 지난 학기처럼 최소 3일 결석하겠다고 미리 결심한 대로 1월에 이미 하루를 썼고 2월에도 땡땡이치고 싶은 날이 수두룩했다. 하루는 오누이를 보내고 침대에 누웠다가 다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반차를 쓴 셈이다. 늦더라도 가는 게 안 가는 것보다 낫겠다 싶어서. 4시간 수업 중 2시간만 듣는 게 어디냐면서. 결과적으로는 늦더라도 가길 잘했고 하루에 독일어는 두 시간이 내겐 스트레스가 적고 그나마 즐겁게 배울 적당한 시간이었다. 독일어가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다면 독일에 올 생각을 못 했을 거다.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움이 줄지 않는다. 독일어 배우느라 매일 스트레스다. 다음엔 이 어려운 걸 배우더라도 내가 현실적으로 독일에서 당.. 더보기
의사의 친절함에 반하다 대문만 하게 새로 난 딸의 앞니 두 개 옆의 헌 이가 며칠 전부터 흔들린다. 심하게 흔들리는 건 아닌데 썩어서 양치질할 때마다 피가 나고 잇몸이 붓는다. 불편하니 어떻게든 빼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돼서 어제 치과에 다녀왔다. 방과 후 수업이 있는 화요일은 오후 네 시에 끝난다. 하교 시간에 맞추어 학교 앞에서 만나 바로 치과로 갔다. 관공서든 미용실이든 병원이든 약속(Termin)이 중요한 독일에서 무조건 간다고 진료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응급 상황에선 예외가 있을 테니 일단 갔다. 이젠 요령이 생겨서 마지막 진료 때는 늘 4개월이나 길게는 6개월 후의 진료 약속을 잡아둔다. 확인해보니 다음 예약은 4월 24일이다. 그만큼 약속이 꽉 잡혀있다. 예약의 일상화다. 아이가 아파하고 피도 났다니 얼마나.. 더보기
마흔 두번째에서야 의미를 찾게 된 식탁에 봄이 왔다. 남편은 쇠고기 미역국을 끓이고 노란 튤립 꽃을 유리병에 꽂아 준비했다. 노란 잎이 하나 둘 떨어질 무렵에 길다란 초록잎 사이로 분홍 심지가 단단하게 자리잡은 새로운 화분이 왔다. 직접 만든 케이크에 하얀 초를 꽂아 밝히니 기분이 환해진다. 음력 생일과 호적상 생일의 혼돈으로 두 번의 생일을 치뤘다. 엄마가 글 쓸 때 먹는 초콜릿을 사고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린 정성스런 선물도 잔잔한 감동이다. 주민등록상 내 생일은 3월 1일이다. 다섯 번째 딸이라 실망한 것치고는 겨우 일주일 늦게 신고된 날짜다. 독일 온 첫 해에 주인 할머님은 가족 모두의 생일을 남편에게 물으셨다. 남편은 생일을 챙길 줄은 모르고 서류상 생일을 알려드렸다. 주인집 할아버지 피터와 할머니 마리타는 한 집에서 위아래층에.. 더보기
[5학년] 부모 상담 5학년 1학기를 마치고 독일 학교는 2월부터 2학기가 시작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부모면담이 잡혔다. 부진한 과목은 과목별 선생님이 특별히 호출하시고 면담시간에 동참하신다. 월요일(2월 11일) 저녁 7에 담임선생님과 독일어 선생님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선생님을 마주 보고 앉았다. 물론 그전에 교실 앞까지 나오셔서 악수로 반갑게 인사했다. 사각형 자리 배치가 눈에 띄는 교실 창가 자리에 앉으니 담임은 아이에게 먼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 뭐냐고 물었다. 아이는 영어와 수학이라고 대답하고 선생님도 아이가 좋아하는 만큼 잘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아이의 강점 중 오리가미는 최고라면서 만들기를 아주 잘한다고 칭찬하셨다. 전체적으로 성적이 좋을 뿐 아니라 친구들에게.. 더보기
숲에서 즐긴 생일 파티 생일 파티 2주 전에는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보낸다. 대부분 파티는 생일 지난 주말에 하는데 장소는 집에서 시간은 오후 2시부터 저녁 7시까지로 정했다. 초대장은 오리가미 잘하는 아이가 만들었는데 인기가 좋았단다. 생일 당일날은 반 친구들에게 머핀을 나눠주었다. 작년 이맘때는 눈이 많이 내려서 눈싸움을 했는데 올해는 어제 낮기온이 13도까지 올랐다. 숲에서 보물찾기를 기획했다. 쪽지엔 저녁 메뉴를 적고 젤리를 하나씩 끼워서 숨겼다. 사다리 타기로 두 팀으로 나누고 팀별 찾은 메뉴대로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게임이다. 총 14개의 쪽지중 4개는 꽝이고 나머진 아래의 메뉴를 적었다. 쪽지엔 모두 한글로 적고 도움을 받아 한글 발음까지 해야 통과다. 나무 잔가지나 나무 주변에 솔방울로 덮어서 보물을 숨겼다. 숨겨.. 더보기
Frohes neues Jahr! 2019년 새해가 밝았다. 일 년간 익숙한 2018이라는 숫자와 안녕을 고하고 새로운 년도인 2019년을 맞이한다. 더 완전한 숫자 2020년이 되면 어떨까. 시간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따라가기 어렵다. 독일의 새해 전날은 Silvester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마트와 빵집은 오전까지만 문을 열고 1월 1일은 문을 닫으니 미리 장은 봐야 한다. 묵은해와 새해의 경계선인 자정에 일제히 폭죽이 터지는 날이다. 저녁 먹을 무렵엔 자정까지 기다리기 어려운 아이가 시범 삼아 터트리듯 간간이 피용 펑펑 터진다. 밤 10시엔 더 잦게 하늘에 붉은 꽃이 수놓아지고. 아마도 자정까지 기다리기 힘들어서 미리 터트리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대부분은 자정에 맞춰 일제히 폭죽을 터트린다. 팝콘 공장이 바로 귀 옆에 있는 것..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