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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곳보통날

독일이니까, 베이킹(케이크)

 

언젠가 한 번은 베이킹을 배워봐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그런 마음을 먹을 땐 딱 이런때에요. 지인이 만들어준 케이크나 빵을 맛보면서 감탄할 때요. , 오븐에서 막 구워 나온 빵을 먹을 때의 그 낭만이 있잖아요. 오븐에서 빵이 부풀어 오르는 순간의 경이를 지켜보면서 맡게 되는 따스한 냄새라든가. 밥이 다 되어 갈 때 맡아지는 밥 냄새처럼 오븐에서 빵이 구워질 때도 그런 맛있는 냄새가 나니까요. 때가 되면 한 번은 경험을 해봐야지. 했는데 마침 그날이 왔어요.

 

남편 졸업 선물로 케이크를 만들어야지 결심(?)하고 두 종류의 케이크를 만들기로 했어요. 친구가 흔쾌히 가르쳐주겠다고 했고요. 이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베이킹이 취미인 남편과 살아요. 남편이 2~3일에 한 번은 주식으로 먹는 일반 빵을 만들고 주말엔 케이크를 만들어 먹는대요. 남편 가족 중에 베이킹을 업으로 하신 분이 있는데 어릴 적부터 곁에서 저절로 배우게 된 거죠. 독일 남자 대부분이 빵을 굽는 건 아니고요. 아주 특별한 경우죠. 친구는 빵은 만들지 않지만 최소 케이크 정도는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했어요. 자기 생일에 두 종류의 케이크를 짠하고 내놓을 정도고 직접 먹어보니 정말 맛있어서 도전해보고 싶기도 했죠. 무엇보다 엄청 쉽다는 말에 혹했어요.

 

친구 생일 때 먹어 본 Nussecke랑 요즘 딸기가 철이니까 Erdbeer-Joghurt-Törtchen를 만들기로 했어요. Nussecke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반이 견과류에요. Ecke, 모서리에 초콜릿을 붓질로 발라주고요. 파이와 비슷한 딱딱한 도우가 밑에 깔리고 잼을 얇게 발라줬어요. 그리고 그 위에 버터와 간 하젤 누스(Hasselnüsse) 570g 섞은 것을 얹어 오븐에 구우면 되는데 케이크 반이 누스예요. 한 조각 이상 먹긴 좀 느끼할 정도로 견과류가 많이 들어가요. 사이에 바른 잼은 단맛을 좌우하니 얇게 바르는 게 좋고요. 많이 단 편이라 커피와 궁합이 잘 맞아요.

 

딸기 요거트 케이크는 얇은 도우에 반 이상이 딸기와 요거트를 섞은 퓌레를 얹고 그 위에 생딸기를 듬뿍 얹어 냉장고에서 굳히면 아주 부드러운 케이크를 맛볼 수 있어요. 레시피는 일 주일 전에 받아서 대충 보고 재료를 준비했어요.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 먹을 생각을 하니 은근히 기대도 되더라구요. 남편에겐 비밀로 했냐면서 묻길래. 제가 케이크를 만드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라 굳이 비밀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어요.

 

독일 사람이 은근히 달달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디저트로 케이크뿐 아니라 초콜릿과 아이스크림 이런 것을 즐겨 먹는 것 같더라고요. 주말에 빵집에 케이크 비중이 확 늘어난 이유가 있었어요. 일요일에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먹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게 큰 행복으로 보이거든요.

  

근데 하루 케이크를 만들어보니 너무 힘들어서 다신 만들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세 시간 반 동안 두 종류의 케이크를 혼자도 아니고 친구가 가르쳐주는 대로 만들었는데도 죽는 줄 알았거든요. 명절날, 전을 한 세 시간 부치고 난 후의 느낌이랄까요. 오븐에서 나는 버터 냄새가 어찌나 느끼하던지요. 처음에 말한 낭만은 금세 사라졌어요.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간절했다니까요. 동치미 국물대신 사과 주스를 마시면서 엉덩이 한 번 못 부치고 쉬지 않고 만들었어요. 친구는 계속 엄청 쉽지? 라고 묻는데 저한텐 절대 쉽지 않았어요. 무슨 과정이 그렇게 많은지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혹시 몰라 기록은 했지만 직접 만든 케이크 먹는 걸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저한테 낭만은 반찬 쫙 깔아놓은 곳에서 우아하게 밥을 먹는 것이듯, 케이크도 그냥 풍광 좋은 카페에서 맛 좋은 커피와 먹는 거 같아요. 혹은 누군가 차려준 집밥에 열광하듯이 누가 대신 만들어준 케이크를 먹는다면 모를까요. 직접 만들면서 낭만까지 챙기는 건 무리예요. 식구들 반응은 아주 압권이었어요. 한 숟가락 떠서 먹으면서 환호성을 지르는데 참, 다음에 절대 만들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니깐요. 이 글을 쓰면서 커피 한 잔과 누스 에커를 먹었는데 맛있긴 해요. 견과류가 많이 들어가서 속이 든든하기도 하고요. 누가 대신 종종 만들어주면 딱 좋겠다 싶네요. 만드는 건 어려워도 먹는 건 역시나 순식간이에요. 케이크 두 판이 이틀을 못 가요. 물론 누스 에커(삼각형 모양으로 32조각이나 나와요) 반은 선물로 나눠주긴 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