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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곳보통날

주인 닮은 개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날, 기차 플랫폼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는 일행이 있었다. 보통은 연인이 주위 사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진하게 입 맞추는 장면을 부러운 듯 쳐다봤다면 이번엔 주인의 품에서 사랑 받는 개다. 의자에 앉은 주인이 그 큰 개를 다리 사이에 넣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으로 털을 쓸어준다. , 사람에게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애정이 묻어났다. 개도 주인만큼이나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다. 저 개 진짜 복 받았구나. 행복하겠다. 생각했는데 기차에 타고 보니 바로 우리 옆자리다.

 

기차에 지정석을 두려면 요금을 더 내면 된다. 우리도 마침 얘들이 있는데 좌석이 없으면 난감할 테니 지정석을 잡았다. 개를 데리고 탄 두 명의 그 중년 여자도 그런 모양이다. 우리처럼 마주본 좌석 네 자리를 차지했다. 검표원이 왔을 때 개 티켓 대신 아이표를 샀다면서 보여줬다. 검표원은 개하고 얘하곤 다르지 않냐, 개는 아이보다 더 돈을 내야 한다. 하면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지만 넘어가는 듯했다. 개가 두 시간 내내 꼼짝없이 엎드려 잔다. 잘 훈련된 그리고 사랑을 듬뿍 받은 개로 보인다. 주인 말을 무척이나 잘 듣는.

 

난 개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개를 좋아한다고 하면 왠지 좋은 사람일 것 같은 느낌은 편견일지도. 독일에서 산책을 하러 갈 때마다 개와 동행인 사람을 개 없이 걷는 사람보다 훨씬 많이 만난다. 매번 마주치면서 살펴보면 주인과 개의 이미지가 대부분 닮았다는 게 신기하다. 대부분은 개 끈을 사용하거나 사람이 오면 알아서 주인이 개에게 주의를 주곤 하지만 통제 없이 풀어놓은 개가 달려들면 솔직히 무섭다. 작년 여름엔 산책하다가 엄청나게 큰 개가 갑자기 달려들어서 심장이 오그라든 적도 있다.  

 

산책 동무와 숲으로 처음 산책간 날, 하필이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손으로 쓸면 엄청 부드러울 것 같은 갈색 털의 덩치 큰 개가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우린 순간 자동으로 멈췄다. 주인이 알아서 통제해 줄 줄 알았는데, 개는 멈춤 없이 달려 결국 우리 두 사람에게 차례로 흙 발자국을 남겼다. 다행히 발자국만 남기고 다른 무서운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론 졸았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당황한 건 사실이다.

 

개 주인이 개보다 훨씬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는 했지만, 표정은 그리 미안해 보이지 않았다. 친구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그렇게 화내는 건 처음이다. 친구가 끈을 왜 하지 않냐. 이렇게 옷을 다 버리지 않았냐 언성을 높여 계속 얘기하는데 개가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렇게 심하게 반응을 하냐는 표정으로 무시하고 차에서 막 내린 다른 개 무리와 함께 숲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이 동네는 개가 끈 없이 다녀도 되는 곳(알아보니 야생동물이 나오는 여름을 제외하곤 가능)인데 그것도 모르냐면서 한심한 표정으로. 친구는 개가 내린 차의 차량번호를 찍었다. 우리가 원래 가려던 숲 산책은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기분은 상한 채. 친구를 도와 함께 싸우지 못해 미안하고 고마웠다. 무례한 개만큼이나 주인도 참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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