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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그리고영화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살면서 내겐 종종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 특히나 무기력증에서 빠져 허우적 될 때에는.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착각이 생을 얼마나 하찮게! 함부로! 다루고 있었던가.

선물같이 주어진 '하루'를 선물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또 살아내야 하는구나.'라며 진한 한숨을 내뱉을 때 칼라니티의 글을 읽었다. 운명처럼.

 

"중병에 걸리면 삶의 윤곽이 아주 분명해진다. 나는 내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건 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은 그대로였지만 인생 계획을 짜는 능력은 완전히 엉망진창이 됐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만 하면 앞으로 할 일은 명백해진다. 만약 석 달이 남았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1년이라면 책을 쓸 것이다. 10년이라면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삶으로 복귀할 것이다. 우리는 한 번에 하루씩 살 수 있을 뿐이라는 진리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하루를 가지고 난 대체 뭘 해야 할까?"

 

무기력이라는 놈과 싸워보기(싸우고 싶은 마음도 없고)도 전에 힘없이 케이오패를 당하고 내 마음 어딘가에선 구멍이 뚫려 바람이 숭숭 지나가는 듯했다.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모두 제 갈 곳을 찾아 집을 떠난 후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다' 고 생각되는 날이었다. 정신없는 날들을 지나 하나둘씩 주변이 정돈되었고 나는 독일이라는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는다. 내 인생이 엉망인 양 느껴지는 것이 마치 새로운 곳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살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듯이 모든 것이 원망스러운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can’t go on. I’ll go on.)”

 

칼라니티의 확고한 신념이 부럽고 잠을 줄여가며 몰두할 일이 있다는 것이 부럽고 무엇보다 그의 열정이 부러웠다. 이토록 멋진 의사가 암이라니! 자신에게 닥친 재앙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쓴 글은 감동적이다. 무슨 의사가 글도 이렇게 잘 쓰나. 천상 글쟁이로 살아도 좋겠다 생각될 만큼 문학에도 꽤나 조예가 깊었다. 죽음 앞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자문할 줄 알고 안간힘을 써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죽음을 너무나 차분하게 그려내서 더 아프다.

 

"루시와 나는 여전히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있고, 무엇이 중요한지 서로 공감하며 이해했다. 삶의 의미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인간관계라면,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 의미에 또 다른 차원을 더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예전부터 아기를 원했고, 우리 가족 식탁에 의자를 하나 더 놓고 싶은 생각이 본능처럼 아직 남아 있었다.”

 

각자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아내느라 서로에게 소홀했던 부부관계를 재정립한다. 미루고 미루었던 아이 갖는 일을 결심하고 자신에게 닥친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를 갖고 낳는다. 새 생명의 탄생은 죽음이 점점 그를 덮치고 있을 때 또 다른 희망이 되어준다.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 바로 '관계'라는 것을 알고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들은 그의 곁을 지킨다. 삶에서 쉽게 간과하거나 놓쳤던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들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아름답게 펼쳐진다.

 

간절히 원하던 아이와 세상에서 가장 감격스런 상봉을 하고 딸과 함께 사는 소소한 일상을 칼라니티는 잠시 잠깐 누린다. 언제나처럼 그렇게 내 곁에 있어주는 아이들 그리고 나의 존재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을 일상에선 자주 잊고 산다. 그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다 언제쯤 아이들 뒤치다꺼리가 끝날까.' 한숨 지을 때 그의 죽음을 읽었다.

 

타인의 죽음을 따가라며 나에게 언젠가는 다가올 죽음에 머물렀다. 감히 다시 일어날 기운을 얻는다. 나아가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랴. 무기력 따윈 개나 물어가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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