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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학교

어쩌다 독일

한국에 살 적엔 외국 생활을 동경하기도 했다. 외국에 거주하는 지인들이 여럿 있고 친한 친구는 20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이젠 아프리카에서 산다. 이런저런 다양한 삶의 패턴이 이상하거나 어렵겠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낯선 땅에서 기존에 살던 것과는 다른 시간대를 사는 그들이 대단했다. 힘겨움도 있겠지만 어떤 모양으로든 성장이 있을 테니 근거 없이 부러운 일이라 여겼다.

 

돌아보니, 2014 학부모가 된 내가 몇몇 엄마들을 만난 자리에서 우연히 외국에 아이만 유학 보낸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캐나다에 이모가 살고 있어서 딸을 유학 보냈는데 나머지 가족도 같이 나가 살면 좋겠다고 했던가. 아마 그 무렵이었을 거다. 남편이 독일에서 살겠다고 했을 때가. 남편은 독일에 가서 살고 싶어 한다고 무심결에 말했다한국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푸념에 말을 보탠 것이다. 그저 희망 사항일 뿐이지 외국에서 사는 일이 실현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그 해 연말엔 청풍호가 보이는 곳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2014년의 마지막 날엔 눈이 엄청 내렸다. 우리가 묵은 리조트가 눈에 갇혔다. 온 세상이 하얀 세상으로 변한 곳에서 우리 부부는 번갈아 가며 남매를 태운 썰매를 끌었다. 그곳에 이틀을 묵으며 서로의 10대 뉴스를 나누는데 남편의 뉴스 중에 '독일 이민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다.' 라는 항목이 있었다. 그 무렵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거나 과외를 받기 시작했을 때다. 아랍어과를 전공한 남편은 언어에 재능이 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을 즐기고 대학생 때엔 통, 번역으로 용돈을 벌고 이집트에서 산 경험도 있다. 나는 언어 배우길 좋아하는 남편의 또 다른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남편의 뜻대로 독일 이민이 가능할까. 실현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고 판단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남편의 꿈이고 확실한 계획으로 외국 생활을 하겠다면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나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이끄는 대로 따르면 될 테니까. 하지만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르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우리 가족은 독일에 산다.

 

한국을 떠나기 최소 6개월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가장 어려운 점은 '결정의 힘겨움'이다. '정말 독일에 가서 살 것인가 말 것인가.' '과연 잘한 결정일까 아닐까?'. '남편의 단호한 결정을 믿을 것인가 과연 믿어도 되나?', '이 나이에 유학이라니 말이 되는 일인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마음의 평안을 허락하지 않았다. 짐을 처분하고 국제 이사를 준비하는 일은 차후 문제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여름, 우리 가족은 독일 땅에 착륙했다. 지나고 보니 남편의 노고가 보인다. 한국에서 미리 우리가 살 집(알고 보니 독일에서 집구하는 일이 엄청 어려운 일이었다.)을 구하는 것부터 아이들 학교와 유치원을 알아보고 입학 허가를 받는 일이라든지 독일에 정착하기 위한 절차들을 남편이 몽땅 처리했다. 난 그저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격이다. 반찬 투정만 하지 않고 지지만 해주어도 좋았을 것을.

 

독일에 온 이후, 3개월은 새로운 나라, 동네, 언어, 문화, 집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랑에 빠져도 호르몬이 3개월 유지된다더니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도 3개월이 되니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고 찬찬히 돌아보다 갑자기 '여긴 어디? 내가 왜 여기에 있나.' 싶은 무력감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게 몰려들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감정도 추락과 상승 사이를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평정심을 찾았다. 기적처럼 6개월이라는 시간이 쌓이니 내 마음이 조금씩 나아졌다.  

 

누군가에겐  삶이 부러울 수도 있을 테니! 지금 내가 사는 곳이 가장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있다. '어쩌다 보니 독일에 사는' 나와 내 가족 이야기를 기록하련다. 내가 머무는 이곳이 더 빛나고 좋아지도록. 고향에 돌아간 날 문득 그리운 한때가  지도 모르는 오늘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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