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잘될 때는 만족감과 희열을 가져다준다. 그 어떤 것에서도 얻지 못할 기쁨이다. 글쓰기는 주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나를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잡념이나 근심 걱정 다 잊고, 아니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오로지 글쓰기 행위에 몰입하는 곳으로" 올리버 색슨의 <온 더 무브> 중에서
1) 예술 친구와 진한 우정
영남 언니랑 11월 한 달간 가장 많이 연락했다. 언니는 올해 썼던 글 중 주제에 맞는 걸 골라 고치며 깊이 몰입했다. 퇴고의 즐거움을 맛보며. 공통 관심사 글을 매개체로 할 이야기는 넘친다. 물론 우리가 글만 통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예전보다 내밀한 속사정을 빼지 않고 진솔해진 이후에 더 깊어졌다는 거다. 좋은 일만 이야기하지 않으니 겉돌지 않는다. 자칫 우울하기 쉬운 우중충한 독일의 11월을 무사히 건넜다. 뿐만 아니라 일상은 활기 찬 에너지로 넘친다. 상응, 배려, 진솔, 충정 우정의 4가지 요소가 자주 떠올랐다. 이 넷 중 뭐가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특히나 상응(비슷한 기질: 감정형 외향형, 김동률 노래를 좋아하고, 글을 애정)과 진솔이 중요하다. 통하는 게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갖고 배려하고 싶고 더 진솔해진다. 충성심은 나머지를 기반으로 저절로 발휘되는 듯. 둘 다 서로에게 아는 걸 퍼주면서 돕거나 영향력을 끼치는 걸 좋아한다. 언니의 도움으로 오누이와 한국사 공부를 시작했고 언니는 티스토리를 시작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함께 나아가는 동무가 있다는 건 참 좋다. 다양한 도구 중 글로 소통하는 건 강력하고. 삶의 많은 영역이 쓰면서 내 블로그 주소처럼 <Better than before> 조금씩 나아지길.
2) 브레이크 거는 딸, 소화기 같은 남편
우리 가족을 비슷한 유형끼리 편을 가르자면 딸과 남편, 그리고 나랑 아들이다. 딸과 남편은 평화주의자. 조화를 추구한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싸우고 난 후의 냉랭한 공기를 못 견뎌 매번 먼저 사과를 해버리는 쪽도 그 둘이다. 속도 없나 싶을 만큼 쉽게 푼다. 영화 <우리들>은 개구쟁이 동생 윤과 누나의 대화에서 널 괴롭히고 때리는 친구를 응징하지 않고 왜 계속 노냐고 다그친다. 괴롭히는 친구랑은 놀지 말라는 누나한테 동생은 이렇게 말한다. "한 대 맞고 또 때리고 때리다가 그럼 언제 놀아?" 그 말이 왜 그렇게 딱 비수처럼 꽂히는지. 딸도 그런다. 엄마, 아빠가 싸우면 그만하고 빨리 놀자,라고. 얼마나 심플한 지. 하지만 그 심플함이 지혜다. 별일 아닌 걸로 싸우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면서도 싸우는 난 아둔하고.
따지기 좋아하고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아들 때문에 난 자주 뒷목을 잡는다. 일명 깐족댄다(쓸데없는 말을 수다스럽고 얄밉게 계속 지껄이다)고. 평일에 서로 조심하다가 소화기 같은 남편 있는 주말에 붙는다. 자신은 김유진 아들 극한 직업 원, 아빠한테 김유진 남편, 극한 직업 투라고 뼈 때리는 말에 폭소하면서. 싸우더라도 빨리 풀고 리셋하는 시간이 짧아진 건 발전이다. 게다가 남편은 주말만 집에 있는데 귀한 시간 도둑맞으면 아깝다. 이젠 주말 부부라 싸움도 마음껏 못하는 건 더 안타깝고.
3) 정체성에 부응하는 글쓰기.
가까운 사람들이 인정하는 쓰는 사람.
딸이 Sach(기초과학) 시간에 요즘 직업에 대해 공부한다. 부모님 직업 조사해오는 설문지에 딸은 당당하게 엄마를 작가(Autorin)이라고 쓴다. 설문지 중에는 당신이 그 직업을 가져서 특별히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딱히 떠오르지 않았는데 남편이 대신 말해줬다. 엄마는 자신이 아는 지식이든 경험이든 그걸 가지고 타인의 성장을 돕는 걸 좋아한다고. 이 문장에 어울리게 11월엔 글쓰기와 관련된 도움을 여럿에게 주었다. 축제 전문가 셋째 언니도 매일 경제 주체 백제 문화제 포럼 발표에 쓸 중요한 원고를 내게 봐 달라고 부탁했다. 문장을 다듬거나 손보는 일은 의외로 즐겁다. 영남 언니의 원고 다섯 편의 퇴고도 도왔다. 내가 아는 만큼 퍼 줄 수 있다. 돈 안 받고도 얼마든지 하겠다 싶을 만큼 신난다. 반대로 돈 안 받으니 부담 없이 하는지도.
나와 함께 7년 간 읽고 쓴 태린씨는 나를 글쓰기 스승님이라고 칭한다. 지난 시간 동안 함께 쓰면서 자신의 삶을 돌보는 쓰는 삶에 만족하면서. 순영님은 글 쓰려고 오랫동안 시간을 쏟았는데 무슨 글을 쓰는지 모르겠어서 결국 못 쓰고 덮었단다. 그래도 글 쓰려고 노력한 그 시간은 어떻게든 남는다. 당연히 그런 날도 있어야 하고. 같은 맥락으로 글쓰기 주제를 못 잡아서 방황하는 종옥 언니도 나의 조언이 도움되었단다. 그런 날 브런치에 가볍게 올린 글이 메인에 뜨면 팁이라도 받은 양 기쁘다. 태린 씨가 나를 글쓰기 선생이라 부르는 것에 조금이라도 부응한 것 같아서. 영리한 글쓰기, 가볍게 스텝을 밟듯 경쾌한 글쓰기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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