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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학교/김나지움 (5 ~ 12학년)

[김나지움 7학년] 해리포터 완독

독일 사니 책값이 현저하게 준다. 한국이었다면 도서관을 수시로 드나들며 몇 보따리씩 책을 빌려왔을 게다. 빌려다만 봤을까. 해외 이사뿐 아니라 독일 내에서 셀프 이사라는 걸 경험하면서 제일 골치 아픈 게 책이지만 독일 살아서 제일 아쉬운 것도 한글책이다. 사주에도 책을 많이 좋아한다고 나올 정도로 아들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책을 본다. 어릴 때는 거실을 서재로 만들고 티브이도 없애고 읽는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만들었지만 살아보니 책이 뭐 그렇게 중할까 싶기도 하다. 눈 나빠질까 봐 걱정이고 몸 움직이고 운동을 더 많이 하는 게 책 보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게임을 많이 해서 걱정이지만.

 

독일 살이 초반(초등 3학년부터)엔 책 좋아하는 아이는 원하는 대로 마음껏 읽고 싶은 책을 못 읽어서 괴로워했다. 집에 있는 책들을 대부분 여러 번 읽었고 셜록 홈즈(시리즈라는 장점)와 다비드 코드(두꺼운 장점)는 네다섯 번은 읽었을 거다. 엄마 책까지 죄다 갖다 읽었지만 해갈되지 않는 듯 보였다. 읽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도 한국에서 보내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언제까지나 종이책에 의존할 수 없다. 아쉬운 대로 전자책도 권했지만 기계로 보는 건 종이책과 차원이 다르다는 걸 아이도 알고 나도 안다. 김영도의 드래곤 라자는 e북으로 읽고 종이책으로 읽겠다길래 한국에서부터 배 타고 넉 달 걸려서 받았다. 처음엔 실컷 읽고 싶은 책을 보지 못하는 게 그렇게 안타깝더니 이것도 팔자려니 싶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한글책에 집착하지 않는다.

 

가끔 이모가 보내주시는 책에 감사히 만족하면서. 희귀템인 만큼 더 귀한 줄 안다. 제일 좋은 건 독일어 책을 읽는 건데 한글만큼 가독성이 따라주지 않으니 좋아하지 않았다. 유치원부터 독일 교육을 받은 딸은 독일어 책과 한글책을 비슷한 수준으로 선호하는데 아들은 그렇지 않았다. 걱정은 됐지만 때가 되면 알아서 읽게 되겠지 싶은 마음도 있었다. 김나지움 다니는 이상 독일어 책도 읽어야 할 텐데 걱정은 했지만 강요는 못했다. 학교 공부 잘 따라가고 좋은 성적 나오는 것만으로도 과분한 터라 더 이상 독일어 관련 뭔가를 들이 빌지는 않는다. 

 

 

그러다 김나지움 7학년 2학기때, 독일어 수업에서 발표 과제가 자율이었는데 아이는 해리포터 책과 영화를 비교 분석하는 걸 자발적으로 선택하면서 할 수 없이 해리포터 책을 읽어야 했다. 2년 전에 1권만 사줬을 땐 관심도 없던 책을 과제로 어쩔 수 없기 읽기 시작했는데 금방 흥미를 느꼈다. 독일어가 이렇게 잘 읽히나 싶은 게 본인도 놀란 듯. 때가 되면 좋아하는 스토리에 어느 날 불현듯 꽂혀 독일어 책을 읽게 되면 좋겠다고 내심 기대하며 기다렸는데 통했다. 처음은 속도가 더뎠지만 한 권씩 클리어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1권을 제하고 모두 700페이지(독일어가 만연체다 보니 분량이 더 많아 보인다)가 넘는 벽돌보다 두꺼운 책 한 권을 읽는데 한 달도 채 걸리지 않는 걸 보면. 전집으로 냉큼 한꺼번에 사지 않았다. 아마존에서 주문하면 편할 것을 일부러 동네 서점에 한 권씩 주문해서 아이 읽는 속도에 템포를 맞췄다.

 

크게 재촉하지도 않고 쾌재를 티 내지도 않으면서. 한글책의 아쉬움은 자연스럽게 현지에서 구하기 쉬운 책으로 채우길 바라면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끝내고 나서는 독일어 책에 특별히 거부감은 없어 보인다. 본격적으로 독일어 만화책이라도 무서운 속도로 읽는 걸 보면. 2020년에 좋아하는 만화책 나루토 시리즈(칠십 권이 넘는다)를 중고로 사준 건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는데 그 외 다른 만화책은 도서관을 최대한 이용한다. 과제로 낸 해리포터 책과 영상의 비교 분석 과제는 훌륭하다고 칭찬받았다. 자기 나름대로의 분석 기준을 뽑고 거기에 맞춰 의견을 썼는데 내가 보기에도 잘했다. 어쨌든 아이들 책값은 많이 들지 않는다. (2021년 10월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