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일 학교

산책, 걷기의 힘

 

토요일 오전, 남매를 꼬셔서 산책을 다녀왔다. 남편이 있었다면 늦은 아침을 먹고 아이들은 집에 남겨두고 둘만 산책을 갔을 것이다. 이젠 컸다고 쉽게 따라나서지 않는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이보다 개 데리고 다니기엔 좋은 점도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 산책에 열심인 독일인은 개 덕분에 주인도 산책을 하고 게다가 말도 잘 들으니 편할 테고 건강도 챙기고 일석 이조다.

 

실은 이틀 전부터 덫을 깔아놓긴 했다. 남매가 좋아하는 장난감이 든 위버라숑 킨더 초쿌릿을 주면서 대신 엄마랑 산책을 가주면 좋겠다고 조건을 걸었다. 원래는 친구들이 오기로 한날에 먹기로 했는데 친구가 오지 않았다. 다음번 친구들이 오는 날 주겠다고 했는데 하도 간절히 원해서 쵸콜릿을 풀면서 산책으로 유혹했다. 막상 산책을 나오면 아이들도 좋아하는데 집을 나서기까지 쉽지 않다. 굳이 가기 싫다는 애들을 데리고 가기 보다는 뭘 보는 시간대에 맞추어 혼자 걷기도 한다. 가끔은 개도 저렇게 열심히 산책을 하는 데 우리 애들도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는 기쁨을 느끼게 하고 싶은 욕심이 든다.


남편이랑 단 둘이 걸을 때 가장 편하다. 집에서 좀 더 멀리까지 걷다 보니 평원과 우거진 숲길을 만난다. 남편이랑 다니는 길과 같은 코스로 한 시간이 넘게 소요되는 길을 아이들에게 소개해주었다. 봄이 오려는지 흙 내음이 겨울과 다르게 촉촉한 날이다. 몇 차례의 비로 눈이 모두 녹았고 흙은 훨씬 부드러워졌다. 큰 아이는 대뜸 그런다. 눈이 녹은 자리에 돌이 있는데 그것은 눈에 휩쓸려 온 돌로 '미아돌'이라고 부른단다. 나도 처음 들어 본 이야기인데 충분히 그럴 만한 이야기라며 눈녹은 자리에서 미아돌을 찾아보기도 했다.


겨울방학엔 남편이랑 시간이 될 때마다 아침 저녁으로 한 시간씩 걸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던 남편은 생명이 연장되는 느낌이 든단다. 한국에 있는 처형들에게 공기 한 봉씩이라도 맛보게 하고 싶다며 감탄했다. 나도 청정한 공기맛에 점점 매료되는 듯하다. 남편 말대로 코와 입으로 들이 마시는 공기가 하나도 걸리는 것이 없다. 이렇게 맑은 공기는 처음 맛보는 것이라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공기가 얼마나 좋은지는 숲 속에서 만난 농가의 지붕에서 증거물을 획득했다. 뽀족 세모 지붕에 초록 이끼가 덥수룩하게 덮혔다. 초록 담요를 씌워둔 것처럼 이끼가 살기 위해선 보통 공기가 아닐 것이다. 


담쟁이 덩굴이 아름드리 나무를 감싸고 높이 높이 올라탄다. 한 나무에 새둥지가 여섯개나 되는 나무도 발견했다.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 독일 정원을 보면 저절로 느껴진다. 어느 집은 숲속에 집이 들어 앉은 듯하다. 분명 집보다 나무의 나이가 많아보인다. 정원 손질이 깔끔해보이진 않지만 그래서 내부가 잘 보이지 않지만 부러 밖에서 안이 덜보이게 하려는 속셈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자연과 사람 사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모습을 산책을 하다보면 자주 발견한다. 숲이 아니면 평원이다. 도대체 이 넓은 땅에서 무엇을 길러 먹는지도 궁금하다. 봄이 오면 알게 되려나. 걷는 길목에 말똥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초식동물의 분비물이 토양엔 훨씬 좋다더니만. 어쩐지 며칠이 지난 말똥이 흙 속에 스며드는 모양이 토양을 기름지게 하겠다. 


자연친화적인 내가 매일 숲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우울감이 걷혀 있었다. 어디에선가 '걷는 일이 쓰는 일만큼 치유력이 있다'는 글귀를 본 것 같은데 진정 그런 모양이다. 이젠 자동으로 걷는 시간대가 되면 집을 나선다. 폐속 깊이 정화시킬 맑은 공기를 몸이 본능적으로 찾는다. 집주변의 온도와는 최소 1,2도는 낮은 숲길을 밟을 때마다 정신이 깨어난다. 마음이 맑아진다. 무기력도 사라진다. 걷는 만큼 외로움을 견딜 힘도 쌓여간다.

'독일 학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검색대)찍히면 대략 난감!  (0) 2017.02.15
어쩌다 독일  (0) 2017.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