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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평화로운 날들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한 날들이다. 이유가 뭘까. 욕심이나 조급함 같은 것들이 많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특별히 좋은 일이 있거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거절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노동이든 가리지 않고 할 마음의 준비는 갖췄다. 휴가 가기 전에 인터뷰 본 곳에서 8월부터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결국은 연락이 없다. 요양원에서 아침식사를 침실에 배달하고 치우는 일인데 그 일을 시도해보기로 결심하기까지 마음의 준비가 꽤 들었다. 나름 용기를 내서 6월 중순에 독일어로 인터뷰를 무사히 봤고 일을 하게 되면 8월부터라 더니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 성사되지 않을 모양이다. 그렇다고 지난번만큼 상심스러운 것도 아니다. 한편으론 하지 않게 되어 다행인 면도 있다. 지금 하던 대로 .. 더보기
도시락 높이만큼 쌓이는 자괴감 10분 후 알람 버튼을 두 번이나 누르고서야 겨우 찌뿌둥한 몸을 일으킨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손을 씻으면서 물이 차갑다고 느낄 틈도 없게 잽싸게 세수하고 부엌으로 간다. 밤새 내린 빗방울이 뿌옇게 맺힌 창문으로 아침이 조금씩 밝아온다. 썰렁한 공기에 얼른 조끼를 걸친다. 성냥으로 초에 불을 켠다. 포트에 물을 받으면서 보니 어젯밤 씻으려고 넣어 둔 세 개의 사과와 당근 두 개가 그대로 물에 잠겨있다. 과일 도시락을 싼다는 걸 깜박한 거다. 20분이나 늦게 일어났으니 서둘러야겠다. 포트에 물은 끓는데 커피 내릴 시간은 없겠다. 싱크대에 선 채로 사과를 반으로 자르고 사분의 일로 잘라 씨만 뺀다. 당근도 깎아 도시락에 차곡차곡 넣는다. 식구수대로 도시락을 싸야 하는 날이다. 빵까지 싸려면 개수는 배가 .. 더보기
햇살 좋은 날, 약간의 알코올 햇살 좋은 오후 3시, 2주 만에 피트가와 산책 약속이다. 부활절 연휴라 피트가가 가족끼리 짧은 여행을 다녀오느라 지난주엔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만나지 못했다. 따가운 햇볕도 오랜만이다. 3월 21일부터 봄 시작이라지만, 그간 여전히 날씨는 별로였다. 아침 기온은 0도에서 1도 사이를 왔다갔다했고 비도 종종 내렸고 바람도 불어 체감온도는 더 떨어졌다. 그러다 10도가 웃돌면서 해가 반짝하고 떴다. 그러니 낮에는 얇은 외투에 겨우내 두른 스카프를 벗어버렸다. 선글라스를 쓰고 가벼운 카디건을 걸치고 피트가 집으로 향했다. 피트가는 남편 볼프강이랑 정원일 중이다. 요한네스 베리라는 나무를 한 그루 심고 있다면서 열매가 열리면 따먹을 수 있단다. 내 무릎보다 조금 큰 키의 나무는 가지마다 많은 봉오리를 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