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좋은 오후 3시, 2주 만에 피트가와 산책 약속이다. 부활절 연휴라 피트가가 가족끼리 짧은 여행을 다녀오느라 지난주엔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만나지 못했다. 따가운 햇볕도 오랜만이다. 3월 21일부터 봄 시작이라지만, 그간 여전히 날씨는 별로였다. 아침 기온은 0도에서 1도 사이를 왔다갔다했고 비도 종종 내렸고 바람도 불어 체감온도는 더 떨어졌다. 그러다 10도가 웃돌면서 해가 반짝하고 떴다. 그러니 낮에는 얇은 외투에 겨우내 두른 스카프를 벗어버렸다. 선글라스를 쓰고 가벼운 카디건을 걸치고 피트가 집으로 향했다. 피트가는 남편 볼프강이랑 정원일 중이다. 요한네스 베리라는 나무를 한 그루 심고 있다면서 열매가 열리면 따먹을 수 있단다. 내 무릎보다 조금 큰 키의 나무는 가지마다 많은 봉오리를 달고 있었다. 손으로 훑어 냄새를 맡아보니 봄이 물씬 느껴진다.
오늘은 걸을까, 앉아서 해를 맞을까, 하다가 우린 정원에 앉아서 볕을 쬐기로 했다. 뭐 마실래? 아니, 괜찮아. 물이라도 줄까? 응. 알았어, 했는데 피트가는 노란색 술 한 병을 내왔다. 20% 라벨을 보고 깜짝 놀란 척을 하니 이 정도는 괜찮다고 해서 웃었다. 실은 나도 알코올이 필요했다면서. 독일인들이 많이 마시는 술인가보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술을 약간 뿌리고 쟌느(Sahne)를 얹어 주었다. 색도 맛도 적당히 잘 어울렸다. 아이스크림에 얹은 20%의 알코올은 희석되어 세지 않았다. 몇 스푼 먹으니 아이스크림을 다 녹일 만큼 햇살은 뜨겁다.
우리가 앉은 의자 위로 떨어지는 햇살을 손으로 가리며 눈을 찡긋거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 사이 볼프강은 우리가 앉은 의자 앞쪽에서 정원을 돌보며 사이사이 끼어 웃음을 안겼다. 알코올 주는 피트가를 아마 네 남편이 경계할지도 모른다고, 해서. 괜찮아, 남편도 알코올 좋아하거든, 했다. 피트가는 정원에 세워둔 펌프를 가르키며 얘들이 좋아하는 펌프를 남편이 얘들 다 컸는데 자기를 위해 얼마 전에 만들어주었다며 좋아한다. 허리께까지 오는 펌프에선 물도 콸콸 나온다.
내게 주어진 한 시간 남짓이 훌쩍 흘러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급하게 인사를 하고 나오려니 집까지 데려다준단다. 오늘은 큰 아이가 영화 약속이 있어서 달려가야 할 것 같다며 만류했다. 피트가와 만남은 늘 그렇지만 유쾌하다. 약간의 알코올이 들어가 적당히 기분도 좋고 날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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