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웃음꽃유진/life in Schwanewede

새모이 접시

 

의식이 서서히 깨어날 즈음 어슴푸레 들리는 새소리에 잠이 깬다. 아직 날이 밝기 전이다.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 서서히 잠을 깨며 감상하는 새소리도 좋고 벌떡 일어나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부엌 창가에서 더 가까이 들리는 새소리는 더 좋다. 그러면서 상상해본다. 정말 어미 새가 아기 새에게 울음소리를 가르쳐주느라 새들이 저리 분주한 걸까.

 

요즘 유독 새 울음소리가 경쾌하다.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새의 지저귐을 듣기 위해서라도 일찍 몸을 깨운다. 새소리가 이렇게 좋은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내 의식 중의 하나가 더 추가됐다. 커피 내리면서 새소리에 귀 기울이기! 봄이 되니 새소리가 더 우렁차다. 잘 관찰해보니 여섯 시가 지저귐의 절정이다. 그 이후 조금씩 줄어들어 일곱 시가 되면 잦아든다. 신기하다.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더니 일찌감치 식사를 끝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버려 저리 조용한가.

 

하루키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새에 관한 인상 깊은 구절을 만났다. 핀란드에 사는 에리가 일본에서 날아온 옛 친구 쓰쿠루와 마주 앉은 둘의 침묵 사이를 뚫고 들리는 독특하고 신비로운 새의 멜로디를 듣다가 에리는 말한다. 어미 새가 아기 새에게 일일이 울음소리를 가르친다고. 그걸 여기 핀란드에 와서 알게 되었다고.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저리 쉼 없이 지저귀는지도.

 

우리 집 정원에 있는 새장처럼 보이는 모형안엔 모이(해바라기 씨앗같은 씨앗들)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채워진다. 지난 학기에 큰 아이는 학교 목공예 시간에 새모이 접시(Vogelfutterstelle)를 만들었는데 그걸 마리타에게 선물했다. 할머님이 무척 좋아하신다. 얼마 전에 보니 저리 예쁘게 달아놓았다. 그 덕분인지 새들이 더 많이 와서 지저귀는 듯 하다. 무더운 여름엔 그릇에 물을 담아 두신다. 목마른 새 먹으라고. 어느 날은 그곳에서 멱을 감는 새도 봤다며 물이 마르지 않게 꼭 떠놓으라고 우리에게도 당부하셨다.

 

새들을 유인하려고 모이를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두는 거였다. 겨울철에도 집집이 양파 크기만 한 망 안에 새 모이를 문가나 정원 울타리에 매달린 것을 심심찮게 발견한다저 집에도 새들이 매일 찾아와서 노래를 들려주겠구나. 그럼 주인은 공짜로 음악을 감상하게 되겠지. 사람과 새, 서로에게 주는 긍정적인 유익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웃음꽃유진 > life in Schwanewed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렌지 샐러드  (0) 2018.04.22
딸아이 머리 자르기 성공  (0) 2018.04.19
햇살 좋은 날, 약간의 알코올  (0) 2018.04.06
고구마와 오징어채  (0) 2018.04.05
여유로운 아침 식사  (0) 2018.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