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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고양이가 웬말이야

 

집에서 살아있는 생명체를 키운 경험은 큰아이가 대여섯 살 무렵의 거북이가 전부다. 그때도 그 또래 아이들이 호기심으로 뭔가를 자꾸 키우고 싶어 하듯이 우리 아이도 그랬다. 가장 무난하고 조용하고 덜 성가신 녀석으로 거북이가 당첨됐다. 호두알만 한 거북이를 이마트에서 2만 원인가 주고 샀는데 한 5년을 키우니 진짜 떡두꺼비만큼 자랐다. 조용한 녀석이라고 할 일이 전혀 없는 건 아니고 먹이 주고 똥은 치워야 해서 물은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갈아줘야 했다. 언니 집에서 조카가 물고기 키우던 처치곤란 어항을 받아서 요긴하게 썼다. 유치원생 남자아이가 무슨 책임감을 가지고 거북이를 키우겠나. 그 뒤처리는 모조리 남편에게 갔다. 신기한 게 그 딱딱한 등딱지를 지고 있는 생명체도 정은 있는지 남편이 욕조에 넣고 물갈고 씻길 때마다 그래도 거북이가 할 수 있는 아는 척을 해서 감동받곤 했다. 독일 오기 전에 할 수 없이 주말농장 호수에 놔줬는데 남편은 그새 정들었는지 눈물을 훔쳤다.

 

남편과 나는 둘다 어릴 적 개를 키운 경험은 있는데 결말이 좋지 않아서 반려동물에 대해 이견없이 반대다. 솔직히 말하면 오누이 키우는 것만으로도 자주 늘 버겁다. 아들은 거북이를 키울 때 자신이 책임지겠노라고 큰소리치고 전혀 돌보지 않은 경험이 있고 5년간 아빠만 거북이를 씻기고 물갈 아준 걸 아는지라 더 이상 뭘 키우자고 조르지 않는다. 생명을 들이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쯤은 알 나이고. 그래도 만약 반려동물을 키운다면 뭘 키울지에 대해 오누이가 종종 얘기하는데 둘 다 고양이를 원했다. 이유는 조용하면서 존재감은 있고 깨끗하다는 게 가장 크다.

 

딸은 최근에 고양이에 꽂혀서 며칠 고양이에 대해 공부해서 나를 설득한다. 키워본 사람들이 모두 하는 말이 좋은 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많다고. 무엇보다 엄마아빠는 어릴 적 한 번이라도 키워봤고 좋지 않은 경험이 있다고 자기한테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건 억울한 일이란다. 독립해서 키우려면 너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면서. 외로움을 달래기에 고양이가 제격이라고. 고양이가 있으면 엄마 아빠한테 놀아달라고 하는 것도 훨씬 줄 거라고. 흘려들어서 잘 기억도 안 나지만 어쨌든 귀찮으리만치 졸라댄다.

 

난 일단 싫은 이유로 개도 아니고 고양이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튀어나오면 놀라고 무섭다. 남편은 털 날리는 것도 싫고 우리집도 아닌데 기물 파손하면 골치 아프단다. 그전 세입자도 고양이를 키웠는데 2층 올라가는 계단의 카펫을 다 갉아놔서 이사 가면서 물어줬을 거다. 이 집에 살던 고양이와 옆집 고양이 '후고'가 친구라 자주 집을 드나들었다고 들었는데 후고가 자꾸 우리 집을 엿본다. 그것만 봐도 솔직히 겁난다. 어느 날 갑자기 들어올까 봐 문 열어놓기도 조심스럽다.

 

작가 홍은진이나 은유도 어느 날 예상치 못하게 키우게 된 고양이에 대해 의외로 좋은 느낌을 갖게 된 글을 읽은 기억은 난다. 글쓰는 사람들이 혼자 글 쓸 때 옆에 있으면서 말은 걸지 않으니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외롭지 않다는 글도 본 적 있다. 글쎄, 고양이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무섭지 않을까. 이런 건 졸라서 될 문제도 아니다. 딸은 자기 용돈으로 필요한 용품과 먹이도 다 사겠다는데 이 또한 돈 문제도 아니고. 딸이 간절히 원해서인지 타이밍도 기막히게 자기 반 단체톡에 7개월 된 고양이를 분양하겠다고 원하는 사람은 말하라고 왔단다. 하얀색과 검은색이 반반씩 섞인 사진 속 고양이는 물론 귀엽다. 마음 약한 남편은 또 마음이 흔들린다. 자식이 간절히 뭔가를 원할 때 의견 충돌은 늘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