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이 스물 셋에 썼다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사랑에 빠지는 <연애>의 심리에 더해 철학적 사유를 너무나 잘 표현해서 감탄했다. 그 이후 이십여 년 만에 쓴 결혼에 관한 소설이 <낭만 그 이후의 결혼 생활>이다. 이 책에선 낭만적 사랑에서 청혼 그리고 결혼과 육아가 포함되었다.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어떻게 사랑이 지속될 수 있는지 ‘보통’스러운 진가가 발휘된다. 마흔에 쓴 사랑인 만큼 성숙하고 진화한 느낌이다.
결혼을 한 후에 종종 듣게 되는 “둘이 어떻게 만났어?”에 묻어 있는 낭만이 아니라 진짜 러브스토리는 바로 이것이다.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40쪽) “이걸 어떻게 평생 견디고 살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할 때다. 사랑의 신성한 시작이라 여겨지는 질문부터 현실적인 러브스토리까지 소설이 보여준 철학적 사유에 따라 답을 해보자.
“둘이 어떻게 만났어?”
가장 신뢰하고 존경하는 형부의 소개로 만났다. 남편 말에 의하면 상사였던 형부의 직급에 눌려서 할 수 없이 만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남편을 만나기 전에 주로 만났던 기독교인 남자들에 실망하고 신물이 날 때쯤이었다. 남자는 그만 만나고 자아실현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던 때에 나를 잘 아는 형부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만났다. 기존에 만나봤던 남자들과는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신앙이 없고 가식적이지 않고 절대 신앙을 신봉했던 내게 신앙이 없으면서도 선한 사람은 처음이다.
“한편, 사랑은 약점에 관한 것, 상대방의 허약함과 슬픔에 감응하는 것이기도 하다.”(43)
남편은 그 당시 내 약점이라고 생각한 부분에 대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반응이 특히나. 지금 생각하면 뭐 약점이라고 생각한 게 우습지만. 내가 속은 그렇지 않은데 꽤 강한 척한다는 것까지 꿰뚫어 보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내 슬픔에 감응만 한 것에 끌렸는지도.
결혼은 꿈도 안꾸던 나에게 결혼을 전제로 만나자길래 거절했더니만 바로 약사와 선을 봐서 속을 뒤집어 놓고 그 죄책감으로 눈길에 미끌어지는 바람에 자동차를 폐차하기도 했다. 결혼을 하려면 신앙부터 갖고 세례를 강요하던 내게 신앙도 사랑처럼 어느 날 갑자기 순식간에 들어오는 때가 있다며 자신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헤어짐을 선포하기도 했다. 결혼을 위해 가짜 신앙을 갖는 척을 할 수 있지만 결혼 이후에 그로 인해 벌어질 갈등을 감당할 자신이 없단다. 생각보다 현실적이고 냉정한 사람이다.
“청혼은 어떤 면에서 그가 달려가는 미래와 관련이 있지만, 그 못지않게 그가 벗어나려는 과거와도 관련이 있다.“ (99쪽) 청혼을 허락한 이유가 더 외롭지 않기 위해서든 과거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더라도 현실은 냉혹하다. 사소한 찻잔을 고르면서도 의견 충돌은 일어나고 별것 아닌 것들로 실밥이 우지끈 터지듯 감정은 수시로 불거져 싸운다. 네 탓이라고 핑계를 대거나 쓸데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가르치거나 내가 이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데 훨씬 더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감내하는 고통의 대가는 늘 불균형을 초래하기 마련이고.
내 곁을 떠날 확률이 극히 희박하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른다. 사랑에 열정이 사라지고 의지가 요구될 때 혹은 새롭게 사랑을 쏟을 대상이 되어줄 기아이와 만난다. 생애 최초의 사랑스러움과 지루함을 동시에 경험하고 부모로서의 한계도 체험한다. 동시에 자신의 부모를 떠올리기도 하며 성숙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퇴행하기도 한다.
“그들은 함께 이뤄온 것에 황홀한 충성심을 느낀다. 다투게 되고 화나고 웃음 나고 어리석고 아름다운 그들의 결혼 생활은 틀림없이 그들만의 것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다.”(506쪽)
황홀한 충성심이라는 말이 어쩜 이렇게 딱 맞게 와 닿으면서 멋지게 들릴까. 희로애락이 적절하게 섞여 경험하는 결혼이라는 제도안에서 황홀한 충성심을 느낀다. 오소희 작가는 언젠가부터 부부 사이에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말이 아니라 ‘애썼다’ 란다. 애썼다는 이 한 마디에 감내한 세월의 힘이 느껴진다. 이런 뜻이 내포된 것 일까. 나랑 지금까지 사느라 고생이 많았어. 한 사람과 오랫동안 사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살아보기 전엔 미처 몰랐어. 그래도 그 한 사람이 당신이어서 다행이란 마음이 드는 건 참말 행운인 것 같아. 서로 다른 우리가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도 이만큼 아이들 키우고 산 건 정말 기적이고 영웅적인 행위라고 생각해. 난 기본적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게 깨는 것보다 더 고난도 기술이라고 생각하거든. ‘상흔 입은 사랑에 충성심’을 끝까지 의리 있게 발휘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
“완벽한 행복은 아마 한 번에 5분이 채 넘지 않을, 작고 점진적인 단위들로만 찾아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이 순간은 두 손으로 붙잡아 소중히 간직해야 할 행복이다.”(509쪽)
라비 칸이 좀처럼 만나기 힘든 짧은 행복을 느낀 찰나에 깨달은 것처럼 완벽한 행복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거나 찾아오기 쉽지 않다. 출몰성, 잠깐 출몰했다가 순식간에 사라져서 더 값진 일몰처럼 행복한 순간도 늘 찰나다, 결혼에서의 사랑도 행복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황홀한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만끽할 줄 알고 지루한 때엔 어서 지나가길 바라며 충성심을 발휘하는 것일지도.
“이제 그는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는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19쪽)
'책그리고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레베카 솔닛 (0) | 2018.07.02 |
---|---|
나는 독일에서 일한다 (0) | 2018.06.19 |
끝내기의 기술, 피니시 (0) | 2018.06.02 |
가족의 두 얼굴 (0) | 2018.05.19 |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소설 (0) | 2018.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