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그리고영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레베카 솔닛

 

20여 권의 저서 중 이 책은 왜 남성은 여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글이다. 모든 남성이 여성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율적으로 볼 때 훨씬 더 많은 경우에 여성이 함부로 대함을 당한다. 그뿐 아니라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성폭력과 강간의 두려움을 갖는다. 미국인 여성 작가의 눈으로 본 남성 대 여성의 이분법적 갈등 혹은 불평등한 권력 행사에 대해 리베카 솔닛은 대담하고 명쾌한 문체로 9편의 산문에서 밝힌다. 글 전반에서 느껴지는 박식함은 바로 방대한 자료 수집과 사회 전반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통찰에서 나오는 듯 하다.

 

내 주변에서 솔닛이 겪은 것처럼 자신이 쓴 책을 아는 척 한 남자를 만날 확률은 극히 드물다. 게다가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고 아는 척하는 경우는 글쎄, 그리 흔치 않을 것 같다.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해도 보통은 정말 잘 아는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일 경우다. 솔닛이 경험한 어쭙잖게 아는 남성이 여성에서 아는 척하며 가르치는 경우는 별로 못봤다. 오히려 내가 그런 적은 없는지 뒤돌아본다. 남성만 여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반대의 경우를 난 더 많이 접한다. 문제는 논리와 이성이 배제된 히스테리(여성의 자궁을 일컫는 그리스어란다)한 무시라 그다지 강력한 힘이 없는 것이 함정이다.

 

사소한 홀대와 무시 말고 지금 한국 사회 전반에서 일어난 미투 운동은 혁명이다. 호리병에서 나온 지니처럼 이들의 혁명적 행동과 생각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솔닛이 말한대로 그녀들의 이름은 가능성이다. 나라면 감히 광장으로 나오지 못했을 그녀들의 용기에 안도한다.

 

그저 그녀 자신이기만 하면 된다. , 그러나 대체 그 그녀 자신이란 무엇인가? 그러니까 여성이란 무엇인가? 장담하건대, 나는 모른다. 당신이 알 것 같지도 않다.(212)”

 

9편의 산문 중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글은 6장 <울프의 어둠>인데 위 인용글은 울프가 한 말이다. 울프가 아플 때 세계는 전쟁 중이었다. 그 무렵 울프가 느낀 어둠만큼은 아니겠지만 울프의 어둠이 바로 나의 어둠이다,라고 적었다. 여성이란 무엇인가. 울프가 짐작한 대로 나도 모른다. 여자로 사는 내내 매번 길을 잃고 헤맨다. 이곳에서도 길을 잃었다. 늘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 장막처럼 시트처럼 누군가에게 가리워진 삶을 살면서 어떤 숨겨진 의미가 있을 거라고 낙관했던 것은 아닐까. 

 

유산이 잦을 때도 나한테 문제가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했고 실제로 일을 그만두고 임신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해서 일 대신 아이를 선택한 삶이라지만 그래서 그 안에서 아이와 내 꿈 모두를 추구하는 삶을 산다고 자위하지만 매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어느 삶을 선택하든 후회는 남겠지만 지금도 그렇다. 후회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쓸 뿐이다.

 

아이만 전담해서 키우는 삶을 선택할 때도 고액 연봉이 아니라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던 것처럼 독일에 온 것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한 탓에 어쩌다 보니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할 수 없다. 지금 가장 큰 고민은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난 여전히 경쟁력 없는 인간이라는 자각이다. 언어도 안 되는 곳에서 내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생각할 때 미래는 어둡다. 그렇다고 한국에서라면 좀 더 나을까 싶지만 그것도 아니다. 결국은 사는 곳을 탓하기 보다는 내 문제라고 합리화시킬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프다. 일 대신 아이를 선택하고 내 삶 대신 가족의 행복을 선택한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대가다.

 

독일에 간다고 할 때 날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은 모두 엄마인 내가 제일 힘들겠다고 말한대로 정말 그렇다. 나만 빼고 모두 만족한 삶을 사는 듯 보인다. 나만 참으면 아이들의 미래도 밝고 남편도 행복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이곳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다른 가족이 만족하는 삶 안에서 나도 적당히 만족하는 척하며 산다. 우연히 오랜만에 만난 한국 분이 남매를 보시더니만 그늘이 없다면서 아이들이 너무 밝고 행복해 보인단다. 남편이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그 말을 기억했다가 내게 말한다. 얘들이 밝다면 그건 아이들의 그늘을 당신이 다 가져가서 그런 것 같다고. 뭐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해줘서 고마웠다. 나의 힘듦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침묵과 무기력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나는 무얼 해야 할까. ‘존재하는 동시에 말소된 삶이 아니려면 어떤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솔닛처럼 당차게 빨랫줄에 내다 널어 말린 그럴듯한 현수막도 내겐 없다. 다만 내가 느끼는 어둠에서 나만의 길을 찾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우리는 희망을 품어야 하고, 동기를 느껴야 하고, 미래의 보상을 계속 주시해야 한다. 모든 게 다 괜찮다고 말하거나 결코 더 나아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데로도 가지 않겠다는 말이다.(308)”

'책그리고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학 34일차] 맘마미아  (0) 2018.08.02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5) 2018.07.16
나는 독일에서 일한다  (0) 2018.06.19
낭만 그 이후의 결혼 생활  (0) 2018.06.17
끝내기의 기술, 피니시  (0) 2018.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