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어디쯤, 새벽 두 시간, 벚꽃, 넓은 이마, 감수성,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 하루 혁명, 인생 경영, 매년 한 권의 저서, 해린과 해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정 하나 등 구본형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단어다. 서른에 구본형을 알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변화경영연구소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그의 제자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나기도 했다. 큰 아이가 돌 무렵이라 포기하고 그가 아끼는 제자가 운영하는 <함께 쓰는 글터>에서 글을 썼다. 연말에 연구소 송년회에 참석해서 먼발치서 그를 보았다.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풍겼다. 그 뒤로도 옆에서 직접 배울 기회를 엿보았지만 9기 연구원으로 지원할 당시엔 그는 병상에 있었다. 꼭 연구원이 되지 않더라도 꿈벗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서야 후회했다.
책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모두 구본형이라는 작가 때문이다. 언제가 책에 사인을 받은 글귀도 이거다. 매일 흘러 넘치게 쓰세요. 어떤 학위보다 확실하고 스스로 배우고 터득한 것을 한 권의 책으로 엮는 일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그의 삶을 통해 느낀다. 그가 떠난 자리에서 여전히 좋은 책을 읽고 쓰는 제자들을 보면서 부러워한다. 그는 없지만 그의 글은 남아서 나를 깨운다. 이 책은 구본형의 저서 중 두 번째로 좋아하는 책이다.
우울할 때 책 속의 보드라운 구절이 종종 떠올라 위로한다.
맑은 날 들판을 산책하듯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돈이란 밥 먹고 난 후 아이스크림 한 개 또는 시원한 맥주 한 캔 마실 만큼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
아이들은 내 자랑이었다가 금세 속 터지는 애물단지가 되고 만다.
인생은 결국 자신의 주인을 닮게 되어 있다.
손님이 돌아간 만찬처럼 인생은 허무한 것이다.
쉰 살이 넘어 마흔의 십 년을 기록하면서 미래에 일어날 열 개의 풍광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구본형의 마흔 살 자서전이 바로 이 책이다. 미 스토리의 힘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과거를 회고하며 쓰는 일은 곧 미래를 쓰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책에서 배운다. 자신의 인생은 원하는 대로 되었노라고 고백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마지막 젊음이 펄펄 끓어 오르는’ 마흔 살에 모든 것을 걸어 혁명에 성공하라고 선동한다. 서른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땐 아직도 마흔 살이 되려면 십 년이나 남았다고 자만했다. 마흔 살이 되기 전에 그처럼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모든 것을 걸고 치열하게 살 줄 알았다. 하지만 구본형은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비범하다. 극적인 반전이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자라난 아이만큼 내게 남은 시간이 줄어든 것 같아서. 막상 마흔 세 살이 되니 조급해진다. 이룬 것 없이 세월이 속절없이 흐른다.
피로감과 절망감에 빠져 내 인생의 나이테가 될 오늘을 모래알처럼 낭비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주어진 하루를 푼돈처럼 써버리지 않게. 지루한 가시밭길이라도 노력하는 걸 게을리 말고. ‘푼돈 서푼 자리 인생’은 되지 말자고 중얼거린다.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그저 묵묵히 한다. 그렇다고 목숨 걸고 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제의 나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나 자신을 재료로 자기다움을 깨워 유일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최고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나를 제대로 알아 내게 잘 맞는 방식으로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테니까.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달라야 한다. 자기경영의 근간이 되는 것은 실천의 철학이다. 바로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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