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아이 동행이 힘들었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어떤 고난도 감수할 수 있으리라. 안동의 온계종택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황의 형 이해의 호가 '온계'란다. 그 밤에 밝게 빛나는 별들을 실컷 보지 못해서 못내 아쉽다. 내가 어쩌다보니 스트레칭 수업을 시작하며 피곤한 몸을 풀었다. 광땡들과는 뭘 해도 즐겁다. 창원 사는 언니가 손수 정성스레 장을 봐온 것들을 예쁜 키티 접시에 담았다. 광땡들과 와인에 치즈와 과일을 먹으며 물 오른 이야기가 안동의 별빛처럼 쏟아졌다.
안동이라는 도시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일줄이야.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아름다운 풍광이더라. 도산서원, 병산서원, 농암종택, 월영교, 부용대 청량산과 도산 주변을 둘러 흐르는 낙동강. 산과 물이 어우러진 안동이 왜 한국정신문화의 수도인가. 이유가 도처에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황 선생과 서애 류성룡, 징비록, 역사의 큰 물줄기가 낙동강을 따라 여전히 흐르고 있는 듯 했다. 이번 안동 여행은 푸짐하게 잘 차려진 밥상을 숟가락 두 개를 얹고 배부르게 잘 먹고 온 느낌이랄까.^^
온계 종택의 주인어르신은 온화해 보이고 며느리 예찬이 마음에 든다. 이황 선생님의 그 유명한 며느리 일화는 선생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학식이 뛰어난 분이 성품까지 갖추셨으니 참 멋지다. 선비는 이론만 아는게 아니라 실천을 하는 게 선비라는 주인장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냥 선비도 아닌 참선비로 살고 싶은 내가 새겨두어야 할 말씀. 아침도 정갈하니 입에 맞았다. 다음엔 꼭 농암종택에서 묵고 싶다. 주변 풍광이 눈 부신 곳,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아침 이슬이 반짝이는 새벽에 강물을 따라 산책하면 참 좋을 것 같다"
위의 글은 2015년 4월, 와우 스토리 연구소 10기 과정 중 엠티로 다녀와서 쓴 후기 중 일부다. 와우 스토리 연구소는 1년 과정은 연지원 선생님, 9명의 동기들과 함께 읽고 쓰며 먹고 마시고 여행하며 타인을 이해하며 동시에 자기를 알아가며 비전을 견고히했던 곳. 2016년 7월 한국을 떠나기 전 가장 가보고 싶은 곳 1위가 안동. 그래서 셋째 언니네 가족과 함께 2박 3일 일정으로 안동 여행을 계획했다. 꼭 묵고 싶었던 농암 종택 사랑채를 통으로 빌려서 하룻밤을 잘 수 있었던 건 행운. 하루는 온계 종택에서 묵고 나머지 하루는 농암 종택에서 잤다. 두 곳의 종택에서 조식을 신청해서 먹었는데 둘 다 다르게 좋았다. 농암 종택 어르신은 우리가 독일에 가게 되었다니 10년 뒤에 다시 만나자고. 그땐 10년 후가 까마득하게 느껴졌는데 벌써 3년 반이 지났다. 네 식구 조식 비가 2만 원이었는데 그 돈을 다시 오누이에게 용돈으로 주셨다. 함께 사진도 찍어주시고.
남편이 며칠 전에 농암 종택 강가에서 물놀이하며 찍은 활짝 웃고 있는 아들의 사진을 보냈다. 우리의 큰 아이가 이렇게 귀여울 때가 있었노라고. 아이가 속상하게 할 때는 어릴 적 사랑스럽고 귀여운 모습을 떠올린다. 부모가 전부이던 그래서 말도 참 잘 듣던 순진한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면 화가 누그러지기도 한다. 더 장성하게 되면 지금의 모습도 그리워할 날이 오려나.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누리는 게 중요할 텐데 말처럼 쉽지 않다. 과거의 그리운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없으니 덜 후회하려면 지금 있는 곳에서 함께 하는 사람과 흠뻑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수밖에. 광땡과 보낸 그 때가 내 인생의 랜드마크라 할 정도로 설레고 좋았다. 그래도 후회가 덜한 건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빠졌고 만남을 힘써 즐겼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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