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문턱에서 완두콩을 한 자루 사다가 온 가족이 둘러앉아 콩을 깐다. 초록물이 배어 나올 듯하다. 콩꺼풀에서 나는 풀 내음도 좋다. 콩깍지를 열면 속에 빼곡하게 줄서 나란히 앉은 모습이 우리 집 남매만큼 실하다. 누가 깐 콩에 제일 많은 콩알이 들어 있나? 8개가 최고였다가 금방 9개를 발견했다며 남매는 서로 흥분한다.
"얘들아, 이게 바로 콩깍지란다. 이렇게 온 가족이 콩을 까니 참 좋지? 놀이가 뭐 별거 있니? 언젠가 이렇게 엄마, 아빠랑 둘러 앉아 콩을 깐 시간들이 행복한 추억이 될 거야." 감수성 풍부한 아빠가 진지하게 말하면 나는 바로 분위기를 깬다.
“얘들아 사실은 엄마가 눈에 콩깍지가 씌워서 아빠랑 결혼을 한 거란다. 그 콩깍지도 바로 이거야. 콩깍지가 눈을 가려 판단력이 흐렸던거지. 이제 콩깍지가 벗겨져서 엄마가 매일 아빠랑 싸우는 거고.” 남편은 자신도 콩깍지가 벗겨진 것은 마찬가지라며 눈을 흘긴다. 남매는 어느 콩꺼풀에 더 많은 콩이 들어있는지 몰두하느라 엄마, 아빠의 말다툼엔 별 관심이 없다.
아직은 엄마에게 콩깍지 쓴 아이에게 묻는다.
아들아, 엄마가 좋은 이유 3가지만 말해봐~
첫째, 요리를 잘한다.
-엄마는 역시 밥이구나. 그럼 요리사를 고용하지 그래?
둘째, 좋은 남편을 선택했다.
(남편은 옆에서 속 없이 브라보!를 외친다.)
-뭣이여? 왠 좋은 남편?
-아빠는 맨날 잘 놀아주잖아요.
-그럼 엄마 없어도 된다는 거 아냐? 아빠하고만 살어리랏다! 흥, 쳇!
-엄마가 없으면 밥을 못 먹죠.
-아빠를 요리 학원에 보내드렷!
셋째, 미모가 뛰어나다.
세 살인가 네 살인가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라고 외치던 아이가 여전히 엄마의 미모를 언급하니 역시나 속 없이 흥분을 급 가라앉힌다. 저녁은 하얀 밥에 초록 방울이 쏙쏙 박힌 예쁜 밥을 해야겠다. 아이의 콩깍지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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