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속내는 통 말하지 않던 P가 마음을 털어놓는다. P의 고민은 남편이 자꾸 큰 아이와 싸운단다. 별거 아닌 것 가지고 아이와 경쟁하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애’라면서 왜 그런지 도통 이해하기 어렵단다. 아들 편을 들면 버릇 나빠진다면서 결국 싸움으로 이어지니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란다. 얼마 전엔 큰 싸움 끝에 결국 이혼하자는 말까지 나왔다며 사뭇 심각한 표정이다.
P가 들려주는 남편의 가족사는 평범하진 않았다. 남자의 속사정을 알고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을 때는 남편이 경험하지 못했던 행복한 가족에 대한 꿈이 있을 줄 알았단다. 결핍만큼 더 자신의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아낄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한 면에 속상해했다. 남의 집 남편 이야기를 듣다가 남 얘기 같지 않고 마음이 편치 않아서 많은 말을 쏟아 낸다.
탯줄이 일찍 떨어진 것도 늦게 떨어진 것만큼의 문제를 초래한다. 엄마의 부재로 자라 탯줄이 일찍 떨어진 나 또한 상담을 받으며 문제를 통찰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노력했지만 현실에선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도 많다. 인내심 많고 성격 좋은 남편에 비해 난 참을성 없고 화도 잘 낸다. 아이라는 대상 앞에선 매일 무너진다. 잘해보려고 노력하지만 딱! 그 만큼 중요한 순간에 걸려 넘어지곤 했다. 탯줄이 일찍 떨어진 사람은 그만큼 에너지가 부족하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내가 애처럼 굴 때마다 남편이 날 많이 일으켜 세워주었어. 어쩔 때는 아이를 두고 남편의 사랑을 질투한 순간도 있었다니까. 사실은 나도 몸만 어른이지 내면은 아이인데 아이만 감싸는 남편한테 화가 치미는 순간이 있었어. 자기는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자기의 남편이 그럴지도 몰라.”
난 남편에 비해 늘 뭔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와의 애착이 결핍된 나와는 출발선부터가 다르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측정하기 어려운 사랑도 인내심도 뭐든 남편이 나보다 더 갖고 유리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에 대한 질투심도 일었다. 많이 가진 남편이 내게 늘 참고 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탯줄이 늦게 떨어진 남편과 살며 고부관계로 힘든 만큼 남편도 탯줄이 일찍 떨어져 몸만 크고 내면이 자라지 않은 나와 사느라 힘들다. 결국 양극단은 통하는 모양이다.
아이가 태어나니 내가 애가 된 적이 여러 번이다. 어쩌면 내면의 아이는 현실의 아이와 비슷한 나이로 자란다.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실제 모습이 드러난다더니 나도 그랬다. 아이가 이유도 없이 울어댈 때(내가 컨트롤 못하는 것으로 인한 좌절감도 크다.) 내가 참을 수 있는 한계는 생각보다 짧았다.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은 언제나 견디기 힘들다. 귓가에서 확성기를 갖다 댄 것마냥 크게 들리는 울음소리를 견디지 못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남편은 엄마에게서 아이를 구하려는 전사처럼 달려와서 내 품에 있던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만 구하고 아내는 내버려두는 남편은 더 싫었다. 나를 돕겠다는 이유로 아이를 데리고 나가 달래는 순간 난 무능력한 엄마가 되고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남편이 ‘우는 아이’보다는 ‘화내는 어른’을 위로해주고 지지해주길 바랬다. 현실에선 아이보다 어른을 먼저 챙기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당연히 남편 입장에 아이를 구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알 턱 없는 남편은 언제나 매번 아이만 끔찍하게 챙겼다. 부모로서 남편이 어린 아이를 돌보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아이만 감싸는 남편의 모습 하나하나가 화를 돋울 때도 많았다.
화를 내는 이면에는 ‘우는 어른’이 있다. 현실에서 울어대는 아이만 데려가 버리는 남편에게 버림 받은 느낌이 올라오는 것을 통찰하고 말해주었다. 아이가 울어댈 때마다 그런 아이를 견디지 못해서 소리지르면서 얼마나 힘들지 내 마음을 헤아려 달라고 남편에게 요구했다. 마침 남편이 상담을 받는 중이라 나의 상황과 심리적인 요소를 이해하기가 수월했다. 내가 유기 불안을 느끼는 것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까지. 어떤 순간에도 날 먼저 챙겨주고 헤아려달라고 했다. 남편에게 내가 아닌 아이가 1순위가 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직은 힘들다고. 첫 아이 때는 유독 그랬다. 큰 아이가 딸이 아니고 아들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좋은 부모와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해서 아직도 어린 아이의 상태인 어른이라도 배우자를 잘 만나면 성숙해질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60퍼센트 정도까지 치유된단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상대방 배우자에게 원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지만 내가 먼저 살아야 했다. 조건 없이 품어준 남편 덕분에 내가 자랐다. 남편의 사랑이 나를 키운 셈이다. 성장한 만큼 엄마 역할에 좀 더 충실하게 되었다.
고민을 털어 놓은 엄마에게 말해주었다. 당신도 힘들겠지만 남편이 조금씩 자라게 사랑을 조금만 더 주어라. 부부 둘 중 에너지가 좀 더 있는 사람이 상대방 배우자를 좀 더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면 그 사랑이 흘러 자녀에게 간다. 육아만으로도 벅차겠지만 큰 아이를 두고 당신한테 사랑 받으려고 아이와 똑같이 구는 남편을 조금만 이해해주는 게 어떻겠냐고. 당신이 아들편만 들고 아이와 다툰 남편이 못 마땅해서 냉정하게 대하면 남편은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엄마가 떠오를 지도 모르니까. 그런 엄마를 둔 남편의 잘못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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