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를 읽다가 내가 겪은 고부관계가 떠올랐다. 아이만 데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버린 선녀처럼 나도 시월드와 영영 만나지 못할 어딘가로 가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때였다. 아들을 염려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뜨거운 호박죽을 주는 바람에 아들은 하늘나라에서 타고 온 말에서 떨어지고 영영 부인과 자식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부부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어떻게든 이겨보겠는데 외부 환경으로 인해 결혼에 영향을 받는 일은 참기 어렵다. 남편의 원 가족과의 관계가 그랬다. 시댁과의 갈등은 참기 어려운 외부 환경에 속한다. ‘내 가족은 남편을 힘들게 하지 않는데 왜 남편의 가족은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하고 억울했다. 한 남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겪어야 하는 부당한 일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게 바로 결혼제도의 불합리한 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결혼 후, 남편은 몸은 나와 살지만 여전히 원 가족과 연결된 보이지 않는 탯줄이 남편을 끊임없이 조종했다. 탯줄이 제대로 끊기지 못한 두 남녀가 결혼해서 살면서 겪는 어려움은 예상보다 많다. 여러 요인 중에 부모가 결혼한 자녀를 한 가정을 이룬 독립체가 아닌 여전히 내 자식으로만 묶여두려는 마음으로 인한 갈등이다. 때로는 아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건네는 '뜨거운 호박죽 한 그릇'에 화상을 입기도 한다.
남편은 한 가정의 가장이라기보다는 원 가족으로부터 온전히 분리되지 못하고 두 집 살림을 하는 꼴이다. 일거수일투족을 원 가족으로 간섭 받고, 보고 해야 하는 정서적으론 전혀 분리되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러한 간섭이 ‘탯줄’인지도 잘 인식하진 못할 정도로 나도 판단력이 흐렸다. 밀착된 관계를 경험해보지 못해서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시부모님께서 주시는 모든 관심을 그저 무한한 애정이라 생각하고 감사했다. 지나고 보니 그것은 단순한 애정이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을 꾸렸음에도 불구하고 원 가족과 분리되지 않은 탯줄이 끊기지 않은 전형적인 모습일 뿐이다.
신기하게도 아이가 태어나고 남편 가족 안의 문제가 불거졌다. 말하자면 복잡한데, 전문가의 상담을 통해 분석해보자면 남편과 남편의 동생간의 문제가 새 식구인 나에게 형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났다. 내 입장에선 생사람 잡는 일이 벌어졌고 하극상이 일어났다. 남편은 다행이 내편을 들어주었지만 부모님은 시동생이 형수인 내게 예의 없는 행동을 했음에도 자식 편을 들었다. 교통정리를 제대로 해주시지 않은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오래갔다. 남편이 내 편에 서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분노했을 것이다.
내 마음이 시댁으로부터 상처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효자 아들인 남편은 내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연락과 방문’을 강요했다. 사건이 매듭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린 매일 ‘사네마네’ 전쟁같이 싸웠다. 내 생애 그토록 치열하게 누군가와 꾸준히 싸웠던 사람은 없다. 아이러니 하게도 부부 싸움의 피해자는 내게 가장 소중한 ‘아이’였다. 어둡고 두려운 터널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가정을 와해시킬 싸움은 그만두기로 하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판단하고 남편에게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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