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지구과학 시험에서 3등급을 받았단다. 서른 명 중 4등급은 1명뿐이고 3등급은 10명이라면서, 반 전체 성적을 브리핑한다. 4등급, 그 한 명이 자기가 될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면서. 엄마는 그 멀리 학교를 다니는 것도 장한데, 3등급씩이나 받다니! 나이도 한 살 어린 네가. 우리 딸 너무 대단하다고 오버다. 한 명뿐인 4등급이 아닌 게 어디냐면서. 솔직히 지금 10살인데 5학년 김나지움에 진학해서 새벽 6시 50분에 집에서 출발,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새벽같이 학교를 다니는 것도 기특하다. 막내는 역시 막내다.
성적은 1등급부터 6등급까지 나뉜다. 독일은 5등급이 2개 혹은 6등급이 하나라도 있으면 한 학년이 유급되는 제도가 있다. 반대로 성적이 평균 1. 5 이상으로 우수하면 월반을 할 수 있다. 아들은 5, 6학년 연속 2년 원하면 월반을 해도 좋다는 성적을 받았다. 물론 아이와 부모가 원할 때지만 우리도 아이도 원하지 않았다. 독일애들도 어렵다는 독일어도 그렇고 외국어인 프랑스어가 제일 걸린다. 월반을 하면 그 학년 치를 건너뛰는 건데 공백이 생기는 걸 메워야 하는데 것보다는 잘하는 상태로 천천히 가는 게 의기 충전에도 좋다고 판단된다. 물론 1년을 아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일 년 먼저 간다고 좋을 게 뭐라고. 친한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별로고. 아무튼 큰아이는 자기 공부는 알아서 잘해주니 고맙게 생각한다.
딸은 덧붙인다.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도 말씀하셨단다. 김나지움 5학년부터는 초등학교와 달리 3, 4등급 받는 게 보통이라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김나지움에 갈 때 선택의 여지없이 성적이 월등히 좋은 오빠와 달리 딸의 성적은 중,상위였다. 대부분이 2등급인, 김나지움 가도 괜찮은 정도는 된 거다. 진학할 때 부모, 선생, 아이가 함께 어디로 진학할지 고민한다. 아이는 오빠가 김나지움에 갔으니 당연히 자기도 가야 할 것처럼 생각하다가 공부를 해야 한다니 갈팡질팡했다. 자기는 공부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면서. 독일 초등학교는 공부를 많이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다른 애들은 모르겠지만 우리 집은 부모도 각자 독일어로 정신없으니 애들 시험도 언제인지 모르고 어찌어찌 넘어갔다. 그러니 딸은 공부도 한번 제대로 안 해보고 그래도 얼추 평균 2등급은 받았으니 잘한 거다. 게다가 학교를 한 살 일찍 들어가서 또래 애들보다 나이도 어리다. 독일 유치원을 1년을 다니고 바로 독일어를 깨쳤고 다른 애들보다 발달이 빨라서 초등학교 입학도 바로 됐다. 외국인으로 독일어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하다고 늘 칭찬한다.
직업학교는 분위기를 모르겠지만 당연히 공부하겠다고 작정한 아이들만 모인 곳의 분위기는 다르다. 딸도 김나지움에 갔더니만 애들 수준이 초등학교와도 다르다는 걸 알고 이제부터는 공부를 하겠다는 야무진 각오도 내비친다. 시험 전날엔 최소 공부하는 예의도 지키고. 7학년까지 상위 1프로를 지키던 아들도 자만했는지 8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독일어 시험에서 3등급을 받았다. 잘하던 아이는 조금만 성적이 떨어져도 본인이 못견뎌한다. 3등급이 못한 거 아니고 괜찮다고 아무리 말해도 본인이 만족을 못하고 시험을 대하는 자세가 좀 더 진지해졌다.
시험 성적 3등급 받았다고 낙담할 것도 아닌 건 태도가 좋다면 얼마든지 반전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1등급 이상을 초월하는 건 힘들겠지만. 초등학교는 수업태도와 시험의 비율이 70대 30이었다면 5학년은 60대 40으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조금씩 달라지는 부분도 바람직하다. 시험만 잘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수업의 준비, 태도, 참여 등을 선생이 매시간 점수화할 수 있으니 선생의 권위는 저절로 높다. 반대로 시험만 잘 본다고 성적이 좋을 수 없는 구조다. 시험은 그날의 컨디션과 운까지 다양한 변수가 작용한다. 단 한 번의 시험보다 중요한 건 당연히 수업 태도다. 태도가 좋은 아이는 시험 성적도 나쁘기 어렵고 최종 성적도 덩달아 좋다. 주요 과목인 독, 수, 영 그리고 제2 외국어의 성적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50대 50으로까지 시험 비중이 높아진다. 주변 과목은 주요 과목과 다른 비율로 가는 것도 마음에 들고. 시험보다 더 중요한 건 수업 태도라는 걸 아이에게 각인시킬 수 있어서 그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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