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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독일 한국에 살 적엔 외국 생활을 동경하기도 했다. 외국에 거주하는 지인들이 여럿 있고 친한 친구는 20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이젠 아프리카에서 산다. 이런저런 다양한 삶의 패턴이 이상하거나 어렵겠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낯선 땅에서 기존에 살던 것과는 다른 시간대를 사는 그들이 대단했다. 힘겨움도 있겠지만 어떤 모양으로든 성장이 있을 테니 근거 없이 부러운 일이라 여겼다. 돌아보니, 2014년 학부모가 된 내가 몇몇 엄마들을 만난 자리에서 우연히 외국에 아이만 유학 보낸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캐나다에 이모가 살고 있어서 딸을 유학 보냈는데 나머지 가족도 같이 나가 살면 좋겠다고 했던가. 아마 그 무렵이었을 거다. 남편이 독일에서 살겠다고 했을 때가. 남편은 독일에 가서 살고 싶어 한다고 무심결에 말했다... 더보기
엄마, 웃어봐요. 엄마, 웃어봐요. 아이가 어느 날, 버석버석 웃음기 하나 없는 내게 말한다. 엄마는 웃을 때가 가장 예뻐요. 엄마에게 참 잘 웃네요. 어쩜 그렇게 잘 웃어요? 하면서 웃음꽃이라고 불러준 사람이 있어. 엄마는 웃음꽃이라는 단어가 참 좋더라. 에이, 엄마가 웃음꽃? 화난꽃 아니에요? 그렇네. 화난 꽃일 때가 더 많네. 웃음꽃 말고 환한 꽃으로 바꿀까 아이가 그리는 엄마 얼굴은 늘 웃음꽃이 가득하다. 한눈을 찡긋한 얼굴에 탐스러운 머리칼 원피스엔 화려한 색을 칠한다. 아이가 그리는 가장 예쁜 사람은 바로 엄마다. 엄마라도 엄마라서 더 많이 웃어야지. 더보기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살면서 내겐 종종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 특히나 무기력증에서 빠져 허우적 될 때에는.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착각이 생을 얼마나 하찮게! 함부로! 다루고 있었던가. 선물같이 주어진 '하루'를 선물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또 살아내야 하는구나.'라며 진한 한숨을 내뱉을 때 칼라니티의 글을 읽었다. 운명처럼. "중병에 걸리면 삶의 윤곽이 아주 분명해진다. 나는 내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건 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은 그대로였지만 인생 계획을 짜는 능력은 완전히 엉망진창이 됐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만 하면 앞으로 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