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한마리가 윙거리는 소리에 눈이 발딱 떠졌다. 램프를 켜보니 딸 아이 머리맡 하얀 벽지 위에 시꺼먼 모기 한마리가 발견이다. 손바닥으로 적중해서 때려잡은 모기는 피다. 이미 많이 먹은 모양이다. 귀한 딸 어디 물렸을까봐 램프로 이리저리 비춰보다 잠이 홀라당 달아났다. 딸은 두손 만세한 자세로 세상 평화롭게 잔다. 천사가 따로 없다. 어른들이 종종 하시는 '크는게 아깝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 매일 밤 다리가 쭉쭉 길어지고 보드랍기만 하던 발뒤꿈치가 딱딱해질 기미가 보인다. 거기다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불쑥 올라온다. 참회의 시간을 잠깐 갖는다. 어제도 딸이 뭔가 만들어 어떠냐고 보여줬는데 내 일하면서 영혼없이 건성건성 대답했다. 어느 순간 타성에 젖어 감탄이 줄고 심드렁하다.
그래도 참회를 잠재우려고 잘한 일도 생각해본다. 하긴 내가 잘한 일이 어디 한 두가지인가. 그마나 제일 잘해주는 일은 아이곁에 있어주고 집밥을 신경써서 해주는 일이다.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독일에서 어쩔 수 없다. 어젠 오랜만에 떡국을 끊여 먹었다. 딸 아이가 너무 맛있다며 허겁지겁 먹으며 연신 엄마 최고란다. 매끼 엄마가 해준 음식은 맛있다고 먹는 아이를 보면 요리할 맛이 난다. 작은 일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어젯밤엔 딸이 난데없이 '엄마는 못하는 일 없이 뭐든 잘한다'며 품에 철퍼덕 안긴다. "그 중에서 요리를 제일 잘해." "엄마가 좀 잘하는 게 많긴 하지" 자뻑모드로 가다가 바로 꼬리를 내리고 "아니야. 엄마 독일어는 못하잖아. 요즘에 조금씩 의사소통이 되지만." "아니야. 엄마 나이에 그 정도면 잘하는 거야." 내가 맨날 머리가 굳어서 못한다고 했더니만 딸은 위로랍시고 마흔에 그 정도면 자기보다 잘하는 거란다. 칭찬인지 욕인지. 원
김나스틱 갔다가 혼자 터덜터덜 걸어오는 데 집 앞 길모퉁이에서 땡땡이 치마에 양산을 바쳐든 딸이 나를 발견하고 양산든 손이 흔들리거리며 뛰어온다. 그 뒤엔 내 남자가 있고. 밖에서 만나면 더 반가운 가족이다. 잠깐 떨어졌다 만나도 늘 반갑게 안기는 딸이 그저 고맙다. 아들도 애기 때는 살갑게 굴곤 했는데 크니까 과묵 모드로 변한다. 딸에겐 감수성과 세심함이 남다르다. 엄마의 기분을 자주 살피고 조금이라도 별로다 싶으면 엄마를 안아주고 수시로 "엄마,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확인시킨다. 자신의 사랑으로 힘내라는 듯이. 언제나 오늘이 가장 예쁜 여섯살 딸이 크는게 아깝다. 내 젊음이 옅어지는 것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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