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밖에 나가면 나와 애들이 보고 싶다며 수시로 전화를 한다. 어느 날은 뜬금없이 딸을 바꿔 달란다. 딸과 통화를 하고 엄마를 바꿔 주길래. 남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만 딸과 비밀이란다. 아하, 딸과 아빠의 비밀이라. 뭔가 궁금했지만 궁금하지 않은 척했다. 남편보단 딸에게 비밀을 캐기가 빠를 것 같아서 슬그머니 묻는다. "딸, 아빠하고 무슨 비밀 이야기했어?" "응 비밀이야." "아, 그래?(서운하지 않은 척) 비밀이 있는 것도 좋은 일이지. 그리고 비밀도 약속처럼 지키는 게 좋고." 옆에 있던 오빠는 "재인아,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건데. 오빠한테만 말해주라" 면서 엄청 궁금해한다.
우리 집에서 남편은 인기가 많다. 오누이에게 아빠가 좋은 이유를 물으면 대번에 잘 놀아줘서 좋단다. 나도 남편처럼 아이들을 ‘짧고 굵게’ 만나면 엄청 반갑게 만날 텐데, 가끔은 아쉽고 남편이 부럽다. 며칠만 아빠를 못 만나도 딸은 유독 아빠를 찾는다. 언젠가 아빠를 이틀 만에 만난 아들도 아빠 본지 꽤 오래된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떤다. 유별나다. 아빠만 보면 딸은 '놀자, 아빠'가 입에 붙었다. 전날 못 놀아준 것까지 다 놀아야 한다면서 독촉하곤 한다. 남편은 자신이 놀이 빚쟁이가 된 것 같다면서도 이런 빚이라면 언제든지 행복하게 갚겠다고 좋아한다. 딸 바보가 확실하다.
아침 해가 뜨기 전, 깜깜한 아침에 곤히 자는 아이를 깨워야 할 때 매번 아깝다. 유치원 때는 늦어도 되니 여유가 많았는데 학교는 지각하면 안 되니 아까워도 할 수 없이 깨운다. 졸음에 눈도 안 떠진 채 딸은 엄마 목을 잡고 엄청난 비밀을 알려준다는 듯 귓속말로 소곤거린다. "엄마, 어제, 아빠 비밀이 뭔지 알아?" "응 뭔데. 엄청 궁금하다." "응 아빠가 오빠랑 내 것 멘토스를 두 개씩이나 숨겨두었어." "와 진짜 신나겠다." 남편은 가끔 아이들과 보물찾기를 한다. 엄마는 이 썩는다고 안주는 막대 사탕이나 위버라숑 초콜릿을 엄마 몰래 어딘가에 숨겨 놓곤 아이와 비밀을 만든다.
딸은 이렇듯 작은 것에 덩실덩실 엉덩이를 흔들며 좋아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도 학교에 가는 일도 아빠가 숨겨둔 보물찾기 놀이 덕분에 하루가 즐거워진다. 아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빠가 숨겨둔 보물찾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아이는 아빠와의 비밀에 으쓱하고 보물을 찾으면서 즐겁고 주전부리 간식을 찾고 나면 아빠가 최고라고 좋아하겠지. 남편은 딸이 찾았는지 묻고 딸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듣고 덩달아 흐뭇해할 테고. 작은 것에도 크게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고 배운다. 별거 아닌 것으로 아이와 매번 잘 놀아주는 남편에게도 배우고. 오랜만에 남편을 치켜세웠더니만 이런 사소한 추억이 아이의 어린 시절을 풍족하게 할 것이라며 뿌듯해하며 잘난 척이다. 내가 무슨 말을 못 한다. 칭찬을 말아야지. 나 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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