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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오늘도

문자보다 감수성(당근 할아버지)

 

독일에서 1학년을 다니는 딸이 M() A()를 배우고 두 문자를 결합해서 ma()가 된다는 것을 배우더니 ‘mama’를 쓰고 읽는다. 외국에 살면서 모국어를 습득하는 일은 중요해서 한국이었다면 내려놓았을 한글 가르치는 일에 에너지를 쏟으며 혈압이 상승하고 뒷목을 잡았던 적이 잠깐 있었다그때 아이는 독일 유치원에선 친구 중에 글을 읽는 아이는 없다면서 학교에 입학하면 한글도 배우겠다며 엄마를 말렸. 학교에 들어가면 숫자와 문자를 기초부터 배우는 독일에서도 당연히 학교 입학 전에 문자 학습을 시키지 않는다.

 

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우는 진도에 따라 한글의 모음과 자음을 가르치니 훨씬 편하다. 한글도 ’ ‘가 결합해서 가 된다는 것을 아이는 쉽게 이해했다. 아이가 글을 배우는 일은 아이에게나 지켜보는 부모에게나 놀라운 일이다. 규칙을 깨닫고 아는 것을 모른 척하는 일은 더 어렵다.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 하나, 둘 문자를 익히게 될 것이다.

 

언어에도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다면 입력된 양이 많을수록 말하기와 읽기가 가능해질 텐데 작은 아이에겐 정성이 부족했다. 큰 아이가 놀랍게 4살에 한글을 깨친 것에 비교하면 많이 늦은 편이다. 큰 아이가 일찍 한글을 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남자아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한다. 남자는 첫째, 몰입하는 주제가 분명하다. 공룡이면 공룡, 자동차면 자동차 끊임없이 특정 주제에 빠진다. 둘째첫째 애라는 특혜로 부모가 책 읽어주는 열정을 엄청 쏟았다. 그토록 많이 책을 읽어주었는데 한글을 떼지 않기도 어렵다그에 비해 딸 아이는 관심 분야가 별로 없다. 기껏해야 공주인데 그것도 남자아이가 빠지는 것에 비해 좋아하는 정도가 약하다. 형제 순위가 둘째라서 부모의 '열정'이 희석되기도 했다. 남편과 딸에게 문맹이라며 놀리던 날남편은 내심 걱정했던지 기사를 첨부해서 메일을 보내왔다.

OECD 국가 중 국민의 언어 능력이 가장 우수한 나라는 '핀란드'.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핀란드에선 8세 이전 영, 유아에게 글자 교육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문자를 인식하는 좌뇌는 7세 이후에 발달하는데 그에 비해 감수성과 관련된 우뇌는 6세 이후에 퇴보한단다. 고로 7세 이후가 글자를 배울 수 있는 최고의 적기라는 것이다. 적기에 배우면 더 빨리, 더 쉽게 글을 배울 확률이 높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렇다. 아이가 뭔가를 배울 때를 생각해보자. 조기 교육보다 적기 교육이 효과적이고 습득도 빠르다. 큰 아이가 피아노를 여덟 살에 배우기 시작했는데 진도 나가는 속도가 엄청 빨랐다. 게다가 자발적으로 흥미를 갖고 배우기 시작했다면 더 즐겁게 배우게 된다.

이른 나이에 문자를 익히면 아이들은 상상력을 펼칠 기회를 빼앗긴다는 내용도 있다. 글자를 한번 알게 되면 글자를 읽지 않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진다. 자신의 이름, 세 글자만 아는 딸도 이 글자만 보이면 귀신같이 아는 척을 한다. 한글을 떼게 되면 당연히 책을 볼 때 글밥으로 읽어 내는 성취감과 스토리 읽는 재미에 그림을 등한시하게 된다. 물론 글자를 습득해서 스스로 더 많은 책을 읽게 되면 분명 좋은 점도 많다. 누군가 읽어줘야 책을 읽을 수 있는 것과 다르게 혼자 책을 읽게 되면 지식 축적 차원에선 확실히 많이 읽게 되는 장점은 있다.

 

한글을 못 읽는 딸의 감수성은 외국 영화를 볼 때 도드라진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장면이나 굿 다이노에서 알로가 급물살에 아빠를 잃어버린 장면에서 딸은 폭풍 눈물을 흘린다. 위 두 영화는 더빙이 아닌 자막으로 보았는데 일본말과 영어로 듣고 당연히 자막을 못 읽는 딸아이는 영상과 음향에 자막 읽는 오빠보다 몰입도가 훨씬 높다.  

문자에 관심도 없고 늦은 아이에게 조바심을 내기보다는 그림, 음악, 상상, 감상 등 감수성을 키우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 라는 기사 내용도 좋았다. 가장 좋은 것은 부모와 함께 충분히 보고 듣고 느끼는 아이의 다양한 감각을 자극 하는 경험을 늘리는 것이 문자를 익히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이른 나이에 알아서 문자를 익히게 되면 그 또한 장점이 있으니 막을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익히게 될 읽기 독립에 조바심을 내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6세 이후엔 퇴보한다는 우뇌가 둔해지기 전에 감수성을 키우는 일에 좀 더 애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네 살땐가 ‘단군할아버지를 '당근할아버지라고 말해서 큰 웃음을 안긴 딸, 당분간은 지켜보는 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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