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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오늘도

짜증 한 바가지에 배부른 날

아이는 쉽게 내게 짜증 낸다. 짜증도 유전인가. 나도 좀 신경질적이고 한 짜증 부리지만. 아무 때나 짜증 한 바가지씩 부려도 받아줄 엄마가 내게도 있었으면 참 좋겠다. 짜증 받아준 경험이 없어서 그런가 아이가 부리는 짜증을 잘 받아주는 엄마는 아니다. 뭐든 다 받아주는 존재가 엄마는 아닐 테지만. 아무리 신경질 부려도 버림받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분명 든든한 일이다. 눈치 별로 보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아이가 부럽. 

 

초등학교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가 엄마에게 별일도 아닌 일로 심하게 짜증부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신기하고 부럽던 기억이 난다. 아이가 아무리 짜증을 부려도 오냐오냐 하고 받아주던 친구 엄마들! ! 이상하고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자식이 뭐길래. 엄마가 특별히 잘못한 일도 없는데 엄마는 자식에게 저리도 잘 받아 줄까. 의아하면서도 내심 부러웠는데 엄마가 된 나도 어느새 그런.

 

독일로 오기 전, 해외 이사로 짐을 미리 보내서 남은 짐이 얼마 없었다. 어차피 떠날 때 더 살 계획으로 미루다 세탁기 돌리는 일이 늦어졌는지 아이가 팬티가 없단다. 그냥 잠옷으로 입고 잔 사각 팬티를 입으라니까. 싫단다. 그럼 노팬티? 하다가 아이가 발을 동동거리며 울상이길래, 그럼 어쩌지 난감해하다가. 결국은 세탁기에 넣은 속옷을 꺼내 주었다. 물론 엄마로서 미안한 일이다. 바로 세탁기를 돌려서 늘 보송보송한 속옷을 대령했어야 했는데 어쩌다 보니 늦었다. 쇼핑 싫어하는 성격 탓에 바로 사지 못해서 생긴 문제다. 아들은 노팬티보단 입던 팬티 입고 꿉꿉하게 갔다. 가면서 내게 성질이다. 속으론 좀 미안했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싶어서 끝내 미안하단 말은 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모기 물린 것까지 내게 짜증이다. 새벽 네 시 귓가에 윙윙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곤히 자는 밤, 불 켜고 모기 한 마리 잡기 위해 졸린 눈 부여잡고 초집중 했다. 보통은 아이 머리맡이나 벽 쪽 어딘가에 붙은 놈 발견하기도 하는 데 실패했다. 아이 몸에 모기 퇴치제 뿌리고 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딸은 한 방도 물리지 않았는데 아들은 입술과 눈두덩이에 물렸다. 아랫입술은 두 배로 부어 부르텄고 눈은 떠지지 않을 정도로 부었다. 부은 입술에 입이 댓 발 나온 모양새가 못난이 인형 저리 가라다. 물론 나라도 엄청 속상한 상황이다.

 

아이의 짜증에 속으론 , 이제 모기 물린 것까지 내게 짜증을 내는구나.’ 하면서 겉으론 얼음찜질 해주면서 혹여 학교 가기 싫다고 할까 봐 괜찮을 거야. 잘생긴 우리 아들, 이 정도쯤이야. 사람은 타인에게 생각보다 관심이 없단다. 너만 신경 쓰지 않으면 괜찮을 거야.” 어느새 아이 눈치를  살핀다. 새벽에 엄마도 나름 모기 잡기 위해 애썼구만. 결국은 짜증 한 바가지로 배부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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