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목표는(이루는 일은) 삶의 무대가 어디(독일)든 가능하다
우리 가족은 매년 연말이면 여행을 떠나 며칠 묵으며 한 해의 피로를 풀고 10대 뉴스를 발표한다. 2015년엔 경주에서, 2014년은 충주에서, 독일에서 두 번째 연말을 보낸 2017년은 하노버에서 이틀을 보냈다.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한 해도 무사히 살았음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살아 보자는 다짐의 시간이다. 이제 곧 일곱 살이 되는 딸도 서툰 글씨로 자신의 열 가지 뉴스를 뽑았다.
아이의 뉴스는 사소하지만, 가족이 호텔로 여행 온 일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온 가족이 빨강 파카를 입은 일이라고 썼다. 그 외에 독일에서 1학년을 다닌 것과 세 명의 친구 초대해 생일 파티를 열고 독일어 배운 것이라고 했다. 큰 아이는 전 년도에 세운 목표대로 독일어 시험에서 2등급(독일 친구들도 받기 어려운) 받은 일을, 남편은 대학원 3학기를 무사히 마친 것과 나는 첫 책의 원고를 완성했고 출판을 결정한 일을 발표했다. 딸은 엄마의 책 출판 이야기에 침대 위를 텀블링 하듯 온 몸을 던져 뛰며 기뻐했다.
남편이 독일 이민을 본격적으로 준비중이라는 뉴스를 발표했을 때는 2014년 마지막 날, 청풍호가 한눈에 보이는 리조트에 묵었고 밤새 눈이 내려 고립되었다. 다음날 차 트렁크에 넣고 다니던 썰매를 꺼내 오누이를 태우고 끌고 다니며 놀았다. 남편은 본인의 계획대로 바로 그다음 해부터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다. 빠듯한 살림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 거금을 들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쉽게 투자하지 못하던 사람의 과감함이라 놀랬다.
2015년 가을, 남편은 사전 답사 차 3주간 독일에 다녀왔다. 독일을 돌며 전체적인 분위기도 살피고 다닐 학교를 알아봤다. 여러 곳의 학교를 방문해서 수업도 들었다. 어떤 학교는 기숙사와 사무실까지 따로 마련해주는 호의도 베풀었다. 상당 금액의 장학금을 제안한 곳도 있어서 원하는 곳을 고르면 됐다. 남편은 3 주간의 독일 방문에서 의기충천해 돌아왔다. 독일에서 살아도 되겠다는 신념이 확고해졌다. 공항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연신 웃음이 가시지 않고 그토록 활기찬 모습도 오랜만이다.
학교가 정해진 이후, 독일로 가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남편은 한국에 미련은 털끝만치도 없어 보였다. 연로한 부모님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미 오래전 탯줄이 끊긴 남편은 부모님보다는 우리 가족의 미래에 더 많은 초점이 맞춰졌다. 아이들 교육뿐 아니라 부부의 행복도 독일에서라면 전혀 나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매번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하는 나에게 수집한 정보와 넘치는 자신감으로 끊임없이 설득했다.
내가 가장 불안한 이유는 이랬다. 어디나 삶의 고충은 따라다니기 마련인데 과연 남편의 계획대로 될까. 넉넉하지 않은 생활 자금과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까지 겪을 남매의 어려움 등의 걱정뿐만 아니라 가장 염려되는 부분은 ‘나는 독일에서 뭐 하고 사나?’ 였다. 불안해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고 동기 부여를 위해 몇 가지 질문에 답 해보라고 제안했다. 두려움의 실체를 직접 적어 가시화하니 불안함과 두려움은 조금씩 가셨다.
하나, 독일 유학을 떠올리면 느껴지는 감정은? 기대감, 불안함, 두려움, 설렘이었다. 새롭고 낯선 환경이 주는 양가감정이 존재했고 떠나기 전 사전준비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했다. 걱정 목록을 작성하고 그에 따른 일감바구니를 작성해서 목록화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평안이 깃들었다.
둘, 나는 독일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길 바라나? 독일에서 원고 보내는 삶이라고 적었다. 인생 목표를 떠올리고 한국이 아닌 독일로 바뀌었을 때 연결점을 찾아봤다. 총 아홉 개의 인생 목표 중 상위는 1) 저자로서 원고 청탁 받는 삶(내 인생의 첫 책 출간하기) 2) 리더로서 치유적 글쓰기 모임 혹은 자기 이해 공동체(마더 와우 스토리) 운영. 인생 목표를 점검하고 독일과의 연결점을 찾아보니 한국이든 독일이든 삶의 무대가 문제 될 것 같진 않았다.
독일로 오기 6개월 전부터 준비한 초고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나 몰입하게 했고 선명하진 않았지만 깜빡이는 등대처럼 희망이 되어주었다. 저자로서의 삶은 독일에서도 가능하겠지만 공동체 운영은 미지수라 생각했는데 현재 이 두 가지 목표를 실현 중이다. 원고 청탁 받는 삶은 아니지만 1년 반 만에 첫 책의 원고는 탈고했고 2018년 3월 출간 예정이다. 엄마들과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싶었는데 소규모지만 지난 일 년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는 것도 놀랍다. 온라인 수업 공지에 한 엄마가 '독일에서 내려준 동아줄'을 꼭 붙들겠노라는 표현은 압권이다.
셋, 2년 후 이상적인 모습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통장 잔액이 넉넉해서 떠나고 싶을 때 유럽여행을 떠난다’ ‘우리 가족 모두 독일에 잘 적응해서 남편 원망할 일이 없다’ 2년이 되려면 4개월이 남았다. 아직은 잔액이 넉넉하지 못해서 여행을 마음대로 떠나지 못하지만, 남편이 취업을 하면 곧 채워질거다. 가족 모두 나름대로 잘 적응해서 남편을 원망할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독일에 오니 좋은 점도 많다며 감사하며 산다.
비전을 떠올리기 위해 했던 질문에 답한 내용을 다시 살펴보니 신기하게도 많은 부분이 이루어졌다. 글을 쓰다보니 이렇게 흘러 잠시 잊었던 인생 목표를 기억해 낸 오늘 새벽 감회가 새롭다. 기록의 힘은 의외로 무섭고 세다. 목표 달성에 실패하는 이유는 목표가 너무 크거나(too big) 특별하지 않거나(not specific), 쓰지 않았거나(not written), 너무 많을 때(too many)라고 연지원 선생님께선 말했다. 그렇다면 인생 목표를 이루려면 실패하는 이유와 반대로 하면 된다. 떠올릴 때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매년 단 하나의 목표를 적는다. 친밀한 사람에게 말하고 집중적으로 관리하면 삶의 무대가 어디든 이루어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실제로 확인했다. (2018년 1월 13일)
<2018년 하노버에서 새로 산(검정) 것과 2017년 함부르크에서 구입한 어린왕자 몰스킨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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