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실에서 기다리는 환자를 직접 데리러 온 키 큰 의사는 반갑게 악수를 청했고 진료실에 들어가서는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 어디서 왔니? 남한. 왜 독일에 왔어? 남편이 00에서 공부하러. 아, 그렇구나. 반가워. 나도 그 학교 알아. 무슨 공부해? 등등의 사적인 것들이다. 최소 한 시간은 기다려서 한 시간 이상 진료를 본 적도 있다. 3분 진료는 없다. 진료만 보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묻는다. 개인적인 질문과 치료와의 상관관계는 뭘까? 싶을만큼.
대기실에서 오래 기다린 이유가 바로 그거였다. 아픈 곳만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스토리(맥락)를 파악하고 친밀한 느낌이 들도록. 처음엔 한 시간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고, 내 뒤에도 여전히 기다리는 사람들 걱정도 했다. 한마디로 오지랖이다. 나 외엔 아무도 오래 기다리는 것에 불만스러운 표정은 아니다. 속은 어떨지 몰라도.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날은 두 시간 기다리다 지친 아들이 짜증스러워하니 한 아줌마는 웃으면서 오래 기다리기 싫으면 네가 의사해야지. 그런다. 하긴 뭐 궁한 사람이 기다릴밖에.
유럽에선 항생제 처방을 거의 해주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랬다. 딸이 감기로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한 말이 인상적이다. 아이가 유럽에서 맞는 첫 겨울이라는 것을 아는(사적인 질문이 이럴때 요긴하구나) 의사는 환경이 변해서 몸이 적응하려고 감기에 걸린 거라면서 이 정도는 아이가 곧 이겨낼 거라했다. 자기 아이라면 약을 먹이지 않겠다고. 유럽에서 처음 맞는 겨울이라 몇 차례 아플 수 있으니 해열제만 처방을 해주었다.
기침을 심하게 한다니까. 밤에 자기 전에 우유에 꿀을 타서 먹이면 기침을 멈추는 데 도움이 된단다. 심하게 기침을 하면 토를 하기도 한다니까. 그럴 땐 베개를 좀 높게 해서 상체를 높여주라고 했다. 아이가 심한 기침을 해서 토를 하면 그 모습을 보기 괴로워서 당장 기침을 멈추게 하려고 한국에선 등에 붙이는 패치를 해주곤 했다. 우유보단 미지근한 물에 꿀을 타서 먹이니 기침이 잦아드는 것도 같다. 목이 부은 나를 위해선 소금 가글을 추천했고.
우리 네 식구 한 달에 내는 보험료 20만원이 전혀 아깝지 않다. 타지에서 아프면 더 서러울 텐데 외국인에게 애정을 갖고 친절하게 이것저것 물어주는 의사 덕분에 아파도 기분은 좋다. 첫해 겨울만 우리 식구 모두 한 차례씩 병원에 갔고 그 이후엔 감기 때문에 병원 찾을 일은 없다. 진료비는 물론 약국에서 처방 받은 아이 약을 살 때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서 처음엔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어른은 약 값을 내고 아이는 무료다. 독일에서 굉장히 중요한 보험, 가격이 저렴한 사보험말고 공보험을 들었을 경우에 그렇다. 보험회사에서 비용은 일괄적으로 처리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병원갈 때 보험카드(Gesundheitkarte)는 잊지 말고 챙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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