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독일에 와서 6개월 만에 가장 먼저 진입한 곳은 김나스틱* 수업이 있는 운동센터야. 한국에서도 3년 동안 꾸준히 했던 운동이 아파트 단지 내 작은 스포츠 홀에서 있던 스트레칭 발레였거든. 내가 사는 동네(슈바니비데)가 작아도 저렴한 가격으로 운동할 수 있는 곳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 두 곳이나 있었어. 마리타한테 물어보니 마침 할머님도 다니시는 데 한 번 같이 가자고 하시더라고. 그 이후에 마리타가 차를 몇 번 태워줬는데 의사 소통이 안 돼서 괴로웠어. 그래서 그냥 혼자 가겠노라고 사양했지.
평일 오전 시간이었는데, 주로 나이 드신 분이 많이 오시는 시간대더라. 다행히 선생은 영어를 잘 했고, 한국에도 두 번이나 방문한 적이 있어서 나에게 호감을 느끼고 잘해줬어. 나를 위해 따로 영어로 동작을 설명해주기도 해서 황송했지. 근데 운동량이 나한텐 너무 약해서 작년 여름 이후엔 다른 곳으로 옮겼어. 칠십 대 마리타도 더 센 선생을 찾았다며 나한테 소개시켜줬어. 확실히 운동한 것 같을 만큼 세더라고. 옮긴 곳에서 지금까지 열심히 다녀.
*김나스틱(gynastics)은 독일 체조인데 아령이나 볼 같은 기구를 이용하는 기구체조야. 그나마 나한테 맞는 스트레칭과 가장 근접한 운동인 것 같아. 지금까지 해본 결과, 등에 특히나 좋고 어깨를 쫙 펴는 동작이 많아서 자세 교정도 되는 것 같아.
운동하면서는 말이 필요 없어. 선생이 하는 동작을 보고 눈치껏 따라 하면 되거든. 작년 여름에 한국에서 돌아온 후, 8월부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한 스물 몇 번 갔나 봐. 말을 한마디 못 하다가(안 하는 게 아니라) 2주 전에 기적적으로 말을 뱉었다니까. 날이 좋은 날은 야외로 나가서 뛰기도 하는데, 그날은 사람도 별로 없더라고. 나포함 일곱 명 정도. 그중 여학생이 있었어. 선두에서 뛰고 있었는데 선생도 나보고 빨리 뛰고 싶으면 앞으로 가라고 그러더라고. 뭐 대충 알아듣는 건 해. 그래서, 난 튀기 싫어서 괜찮다고 뒤꽁무니에서 그냥 천천히 따라가려고 했지. 근데 내 앞에 아줌마가 너무 느린 거야. 걷는 수준이랄까. 그래서 그냥 앞으로 가서 그 학생 옆에 나란히 섰지. 눈웃음으로 인사만 하고. 한 십분 이상 말은 안 했어. 안 했다기보다는 못한 게 더 정확하지만.
내가 외향형이긴 하지만 누가 먼저 말 시키지 않으면 또 막 말하고 그런 사람은 아니거든. 근데 그 학생도 외국인한테 말하기가 뻘쭘했나봐. 내가 독일어도 잘 못 하는 거 알 테고. 그래도 그 친구가 먼저 말을 걸어주길 바랐는데 걔도 그럴 생각은 나처럼 없는 거 같더라고. 말을 못 해서 안 한 것도 있지만, 훈훈한 봄바람을 마음껏 맛보면서 뛰는 것도 괜찮았어. 사실은 머릿속엔 뭐라고 한마디를 할까. 계속 궁리 중이라 마음껏 맛본 건 아니고.
그냥 둘이 말없이 뛰기만 하는데 뒤에서 선생이 무슨 단어를 말하는 거야. 베비궁?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단어인데 뭐지. 이때다 싶어서 Was ist 베비궁? 묻는 척하며 말을 걸었어. 근데 더 웃긴 건 내가 발음한 베비궁을 못 알아 들어서 한 다섯 번은 더 말했을 거야. (이렇게 저렇게) 결국 알아듣고 뭔지 알려주더라. 영어로 하면 ‘워킹’, ‘무빙’ 정도 되나 봐. 말 걸은 김에 내가 아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어.
"슈바니비데에 산 지 얼마 됐어?"
"18년" (이젠 독일어 숫자를 조금 알아들어.)
"아, 그럼 고향이구나." (하이마트, 고향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거든)
"맞아."
"아하."
"몇 학년이야?" 이 질문은 몰라서 영어로 했어.
12학년이래. 김나지움에 다닌다고 했고.
그래서 내 아들도 이번 여름에 간다고 했어.
4월과 5월 두 달에 거쳐 아비투어(대입시험)를 본대.
무슨 공부하고 싶어? 물었더니만 의대에 갈 거래. 공부 잘하나 봐. (이 말은 도저히 모르겠더라.)
바쁠 텐데 운동하러 온 일은 참 잘한 일이다,도 속으로만 생각했지.
어디 대학 가고 싶으냐니까. 하노버나 또 어디라고 했어.
좋은 점수 받기를 바래.가 독일어로 뭔지 몰라서 굿 럭 투유!를 해줬어.
다음 날 독일어 수업시간에 쇼팽한테 막 자랑을 했어. 내가 드디어 독일어를 말했다. 근데 몇 학년이냐고는 뭐라고 해? 아이투어 보는 학생이었는데 좋은 점수 받기를 바란다는 말을 쇼팽한테 물어서 각각 두 개씩의 표현을 배웠어. 다음번엔 꼭 써먹어야겠어. 어찌 되었든 독일어로 말을 뱉은 최초의 날인 셈이야. 그것도 길게. 대화를 시도했다는 것이 중요해. 조금씩 독일어가 들리는 것도 기쁘고.
"Welche Klasse besuchst du?"
"In welcher Klasse bist du?"
"Ich wünsche ihr alles Gute zu ihrer Prüfung"
"Ich wünsche alles Gute zu deiner Prüfung viel Glück!"
김나스틱 이야기로 시작해서 독일어로 마무리했네. 오늘의 말투가 이런 것은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읽어서 그래. 요런 말투 괜찮은 것 같아. 글이 술술 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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