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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곳보통날

도시락 그리고 이불도 각자

하노버, 크라운 플라자 호텔(애들 침대도 각각 세팅 센스있게 하리보까지)

 

딸의 유치원에 일주일에 한 번 도우미로 나간 간 첫 날이었다. 9시에 원형으로 의자를 놓은 곳에 꼬맹이들이 한 명씩 앉고 두 분 선생님도 아이 사이에 앉으셔서 조회 비슷한 것을 했다. 아이 한 명이 그날의 날짜와 요일을 말하고 출석을 부르고 바로 아침 도시락을 먹으러 갔다. 첫날은 뭘 모르고 도시락 준비를 못했다. 어차피 12시면 끝나고 아침도 먹었는데 귀찮게 도시락까지 챙길 정신은 없었다. 그런데 아이뿐 아니라 선생도 도시락을 싸 와서 애들과 같이 먹는다. 주로 빵과 과일인데 나한테 먹어보란 소리가 일절 없다. 한국이었다면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할 텐데. 싶어서 서운한 마음이 잠깐 들면서 다 먹는 데 혼자만 안 먹으니 괜히 뻘쭘했다. 우리처럼 반찬 문화가 있는 게 아니니 펼쳐 놓고 먹을 일이 없다. 각자 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이라곤 눈곱 만치도 없는. 하긴 정이 많은 게 늘 좋은 것은 아니지만.

 

호텔도 커플이 쓰는 더블 침대뿐 아니라 아이가 자는 침대에도 일인용 두 채의 이불이 준비되어 있다. 부부도 한 침대에서 각자 이불을 덮는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생각할수록 괜찮아 보인다. 체질에 따라 이불을 걷어차거나 덮어도 옆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을 테니까. 도시락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 내용물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먹을 음식은 내가 알아서 준비해서 먹으니 편하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깜박하고 도시락을 준비해오지 않은 아이에겐 조금씩 음식을 걷어서 주기도 한다. 이런 사소한 것들에서부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생긴 모양이다.

 

지갑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부담스러워도 예의상 내가 계산하는 게 마음이 편할 때도 많다. 그렇다고 누군가 대신 사준다고 마냥 마음이 편하지도 않지만. 빚진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 내건 내가 낼게요. 혹은 각자 먹은 건 각자 계산하죠. 이렇게 말하는 게 지금은 많이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지만 예전엔 정 없고 냉정한 사람으로 비취곤 했다. 친한 엄마랑 밥을 먹고 밥값을 내려고 하면 내가 먹은 건 내가 낼게. 하면 괜찮다고 한다. 오히려 사주는 게 부담스러워도 얻어먹을 때보다 마음은 편하다. 이런저런 불편한 마음 없이 각자 계산은 이러나저러나 합리적으로 느껴지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각자 개인 이불을 덮고 자기 몫의 도시락을 먹고 자기가 먹는 비용은 자신이 내는 것. 정이 없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내가 낼까 말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 비용까지 두 배로 내면서 부담 느끼지 않아도 되니 좋다. 누군가 사주면 다음 번에 다시 만나서 갚아야 한다는 빚진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되니 심적으로 불편하지 않다. 이불도 각자의 취향대로 덮던지 말던지 개인의 취향을 존중할 수 있으니 꽤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대학 다닐 적만 해도 선배나 혹은 군대에서 제대한 복학생이 여학생에게 밥이나 술을 사주곤 했다. 난 늘 의문이었다. 아니 왜 나한테 밥을 사주지. 부담스럽게. 워낙 지갑이 가벼울 때라 학생 식당에서 저렴한 식권으로 사주는 밥이라도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부담스러웠다. 미팅에선 이상하게 남자 쪽에서 계산하겠다고 나섰다. 무슨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듯이. 아니면 그렇게 하면 좀 더 멋져 보이는 건가. 난 다시 만날 것도 아닌데, 밥값은 반반씩 내겠다고 자처했다. 다시 만난다면 다음에 갚을 기회가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먹고 튄 셈이니까. 남편과 연애할 때도 너무 철저하게 더치페이를 하니 오히려 부담스러워했다. 부담스럽다기보다는 낯설어한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난 왠지 모르겠지만, 내가 먹은 것은 내가 지불하는 게 서로에게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아들 녀석이 친해진 친구랑 처음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로 한 날이 떠오른다. 지금은 알아서 돈만 들고 가 친구랑 영화도 보고 오지만 그땐 저학년이라, 티켓이랑 과자는 사주고 둘이 영화를 보라고 들여보냈다. 각자 영화 티켓 예매는 당연했고, 음료와 팝콘을 사는데 난 한국에서 하던 습관대로 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먼저 주문한 친구 엄마가 자기 아이 것만 계산하는 것을 보고 겸연쩍었다. 너무 당연한 일인데 무안한 느낌이 드는 건 내가 아직 그렇게 익숙한 건 아니었구나. 얘들 친구들에겐 가끔은 사주기도 하고 얻어먹기도 하는 문화에 익숙한 면이 남아있었구나. 깨달으면서 속으론 정 없네. 중얼거렸다. 가끔은 정 없네 싶다가도 참 합리적이구나 하면서 '개인주의와 정 사이'에서 난 어쩔 수 없이 합리적인 개인주의 쪽으로 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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