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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꽃유진/MeStory

샤넬은 아니지만 간만에 취향 발견

나에겐 취향이란 게 별로 없지 싶다. 브레멘 축제에 갔다가 10유로에 스카프 3개를 고를 수 있어서 큰 맘 먹고 샀다. 10유로면 한국 돈으로 만 삼천 원인데 돈 쓰기가 아깝다. 해외이사 이후엔 꼭 필요한 물품인지 재차 점검하고 사는 편이다. (e북이라 그나마 다행)은 턱턱 사면서 좀 우습긴 하지만. 보드라운 느낌인 가죽으로 된 작은 가방도 같은 날 샀다. 핸드폰과 지갑만 들어가는 크기는 비효율적이라고 여겨서 좋아하지 않지만 나도 가끔은 브로첸(작은 빵)이라고 불리는 핸드백이 탐나긴 한다.

 

외출할라치면 늘 주렁주렁 에코백이나 큰 가방을 걸치고 다닌다. 읽을 책뿐 아니라 도시락이며 물 등을 넣기엔 큰 가방이 편리하다. 장바구니는 필수고. 그런 내가 작은 가방과 스카프로 사치 좀 부렸다. 스카프도 종류별로 세 개나 고르는 호사라니! 몇 번을 망설이다가 2년간 애용한 스카프가 낡기도 했다. 두꺼운 재질 말고 여름 소재로 된 얇은 스카프가 휴대도 편하고 변덕스러운 독일 날씨에 요긴하다. 언제 어디서 비가 내릴 지 모르니까. 바람막이 잠바와 스카프 그리고 면으로 된 모자가 있으면 좋다. 아침저녁 날씨가 꽤 쌀쌀해서 서늘하다 싶으면 스카프를 두르거나 비가 오면 모자를 쓰면 된다.

 

남편이나 나나 취향이 까다롭거나 까탈스럽지 않다. 좋게 말해서 수수한 편이다. 큰 아이가 5학년 담임을 아빠랑 비슷한 면이 있다고 말하면서, 스타일은 자기는 꽤 멋지게 입는다지만 그렇게 세련되지 않다고 했다. 한마디로 촌스럽다는 이야기다. 멋은 부리지 않는 대신 깔끔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특별한 취향이 없으면 단정한 게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니까. 최소한의 구색은 맞춘다. 남편은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옷을 입는다. 학교 모임에 갈 때는 깔끔하게 입고 가면 좋을 텐데 내가 보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입어서 속을 뒤집어 놓는다. 나랑 같이 사는 이상 특히나 나와 외출할 시엔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토요일 아침 입학식 도우미로 딸 학교에 싸우면서 집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비를 한참 맞다가 추위를 느껴서야 아침에 두르고 간 스카프가 생각났다. 맞다. 옷 걸어놓는 곳에 가방이랑 카디건 밑에 걸어놓고는 또 깜박하고 왔다. 맨날 칠칠찮게 뭘 흘리고 다닌다. 학교와 집 딱 중간쯤에 와서야 생각이 나서 어쩔 수 없이 학교로 돌아갔다. 비는 더 거세게 오고. 하필이면 새로 산 스카프를 처음 두르고 간 날이다. 하는 수 없이 그 비를 맞으며 다시 학교로 갔다. 이런 날은 차가 없는 게 아쉽다.

 

오랜만에 아끼는 구두를 신었더니만 내 걸음걸이는 점점 속도가 처지고 남편은 저만치 앞서간다. 도저히 안 되어서 먼저 가서 찾아달라고 했다.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데 남편이 빈손으로 나온다. 실망하는 목소리로 없냐니까. 없단다. 내가 다시 찾아보겠다니까 그제야 찾았다면서 허리께 뒤에 숨긴 걸 보여준다. 으그그 이 와중에 장난을 친다. 새로 산 스카프라 비 맞을까 봐 두르지도 못하고 옷 속에 숨겨서 왔다. 작은 가방도 카디건 안에 최대한 숨겨서 비를 피하고.

 

남편은 무슨 샤넬 가방도 아닌데 그렇게 애지중지냐면서 놀린다. 괜히 자기가 미안해진다면서.(스카프 사는 날 가방도 25유로에 샀다) 남편은 자기가 입은 셔츠를 벗어서 머리에 씌워준다. 자기는 시골 영감처럼 하얀 반소매 런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고 비를 옴 빵 맞으면서. 이럴 때 보면 남편이 날 진짜 아끼는구나 싶다. 그렇게 욕먹고도 한결같이 잘하는 걸 보면. 아침에 스타일 엉망이라고 비난한 게 갑자기 미안해지면서 순간 깨깽이다.  내가 아끼는 아이템 청바지와 플랫 슈즈에 스카프와 가방를 추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