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 봄이 왔다. 남편은 쇠고기 미역국을 끓이고 노란 튤립 꽃을 유리병에 꽂아 준비했다. 노란 잎이 하나 둘 떨어질 무렵에 길다란 초록잎 사이로 분홍 심지가 단단하게 자리잡은 새로운 화분이 왔다. 직접 만든 케이크에 하얀 초를 꽂아 밝히니 기분이 환해진다. 음력 생일과 호적상 생일의 혼돈으로 두 번의 생일을 치뤘다. 엄마가 글 쓸 때 먹는 초콜릿을 사고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린 정성스런 선물도 잔잔한 감동이다.
주민등록상 내 생일은 3월 1일이다. 다섯 번째 딸이라 실망한 것치고는 겨우 일주일 늦게 신고된 날짜다. 독일 온 첫 해에 주인 할머님은 가족 모두의 생일을 남편에게 물으셨다. 남편은 생일을 챙길 줄은 모르고 서류상 생일을 알려드렸다. 주인집 할아버지 피터와 할머니 마리타는 한 집에서 위아래층에 산다. 작년 여름 78세 생신을 맞은 마리타는 다음 주 큰 수술을 앞두고 병원에서 검사를 받느라 일주일간 입원했다가 토요일에 퇴원했다. 내 생일날 병원에서 전화하셔서 축하해주셨다. 유진, 생일 축하해. 모든 일이 잘 되고 좋길 바란다는 메시지다.
매번 3월 1일엔 피터와 마리타는 선물을 들고 우리 집에 오셔서 축하해주신다. 나뿐 아니라 오누이와 남편 생일까지 꼭 챙긴다. 물론 우리도 할아버지와 할머니 생신을 함께한다. 할머니가 집에 돌아온 후 피터는 선물을 준비했는데 마리타 다리가 많이 부어서 걷는 게 여의치 않다고 집으로 와 달라고 했다. 조각 케이크를 준비해서 온 식구 아래층으로 출동했다. 탁자 위에 곱게 포장된 선물이 기다린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선물 개봉식을 한다. 아주 낯설다. 누가 내 생일을 기억하는 것도 부끄럽고 선물을 받는 건 더 민망하다.
3월 1일로 아는 피트가도 그날 밤에 선물을 들고 방문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생일 축하 노래까지 불러주면서. 다음 주 카페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자고 약속을 잡았다. 독일은 선물을 받으면 답례로 차와 케이크를 대접하는 게 예의다. 어릴 땐 생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교회를 다닐 땐 월별 생일 파티를 하고 선물을 받았다. 가족을 꾸리고선 케이크에 초를 켜고 생일 축하를 부르거나 외식했다. 한국에선 특별한 것 없이 지냈다. 매년 맞는 생일이 뭐 그렇게 중요할까, 싶고.
내가 태어난 사건보다 엄마의 죽음이 더 생각나는 날이다. 그 젊은 서른 일곱이라는 나이에 아이를 다섯이나 낳고 일찍 절명한 엄마가 불쌍했다. 워낙 몸이 허약하고 손에 물 한 번 안 묻힌 막내딸로 귀하게 자란 딸이 12형제의 장남에게 시집을 왔으니 그 시절 아들 낳고 싶은 욕심도 이해된다. 아이를 셋까지만 낳았어도 일찍 죽진 않았을 텐데…그럼 나란 존재는 없었을 거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무작정 기뻐하기엔 뭔가 이상한 날이다.
특별한 의미를 찾지 못했는데 독일에 와서야 생일의 의미를 되새긴다. 작년까지만 해도 요란스러운 독일의 생일 문화가 생경했다. 친구에게 "독일 사람에겐 생일이 왜 그렇게 중요해?" 물었더니만 되레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네게 중요한 날은 언제야?" 딱히 떠오르는 날이 없었다. 신조는 매일을 특별하게 잘 보내는 게 중요하지. 무슨 날만 특별하게 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건 궁색한 핑계다. 생각처럼 매일 특별하게 보내진 못하니까.
처음에 재차 생일을 확인하는 친구에게 혹시라도 생일을 축하할까 봐, 별로 중요하지 않아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생일이 없었다면 넌 이 세상에 없었잖아. 엄청 중요한 날이지." 생일 전엔 축하하지 않는 모양이다. 생일 날 이후에만 내가 존재하게 된 거니까. 아픈 마리타를 보니 나이가 들수록 생일은 더 특별해 보인다. 내년 생일도 올해처럼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맞을 수 있을까. 물론 그건 젊은 나도 마찬가지다. 살아있을 때 누리는 게 생일이다. 죽으면 생일은 자동으로 잊히고 제삿날로 기억할 테니까. 황송하리만치 축하를 받으니 우울감도 사라진다. 마흔 두번째에서야 특별하고 의미있게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