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잠자기 전 의식으로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이번엔 자연스럽게 <마지막 이벤트>를 골랐다. 이젠 읽어줘도 좋을 것 같아서. 내가 좋아하는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을 쓴 유은실 작가의 책. 죽음이 삶의 '마지막 이벤트'가 된다면 그것도 괜찮겠구나.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드는 생각이다.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유쾌하고도 철학적으로 그려내다니! 참담한 순간의 뻑큐 손가락과 빤스 상자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만든다.
아이에게 읽어주다가 나도 목이 메는 그런 동화다. 딸은 주인공 영욱이의 할아버지가 죽는 페이지에서 내 품에 안겨 울었다. 너무 슬프다면서. 마리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처럼. 요즘 우린 마리타에 대한 추억만큼이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엄마가 죽더라도 너무 슬퍼만 하지 말고 씩씩하게 살라는 둥, 엄마를 잊으면 안 된다는 둥. 엄만 항상 네 마음속에 있다는 둥 농담처럼 웃으며 이야기하면 딸은 그런다. 슬프다고. 갑자기 목이 뜨거워진다고.
할아버지가 준비한 특별한 이벤트 덕분에 남은 가족들은 장례식장에서 한바탕 소란스럽다. 포토샵 한 영정사진, 빤스 상자 그리고 기발한 수의와 유서까지. 죽음과 슬픔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들이다. "누군가 떠나도 삶은 계속된다는 엄연한 슬픔에 대해 이야기” 하는 유은실 작가의 글 덕분에 울다가 웃었다.
마리타의 딸 니콜은 우리가 사는 곳에서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산다. 마리타는 딸이 사는 곳 근처에 장지를 결정했다. 피터에게 우리 가족은 참석하고 싶다고 했는데 니콜과 상의해보겠다고만 하고 한동안 답이 없었다. 그렇다고 장례식에 꼭 가족만 참여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독일의 장례 문화도 모르는데 그냥 막무가내로 갈 수도 없어서 난감했다. 어쨌든 독일의 장례식엔 조의금 대신 꽃과 카드를 대신한다니 그걸 준비했다. 꽃집에 가서 내일 지인의 장례식이 있는데 어떤 꽃을 사야 할지 처음이라 모르겠다고 했더니만 거의 모든 색이 다 들어가는 화려한 꽃을 만들어줬다.
카드는 따로 사서 얘들에게 쓰라하고.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도 할머니가 제일 예뻐하셨던 재인이가 그림과 편지를 써서 드렸는데 마리타가 크게 기뻐했다고 전해 들었다. 마리타를 생각하면서 일단은 노트에 써보고 카드에 옮기자면서 딸에게 할머니를 떠올리면 뭐가 제일 생각나냐니깐.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보면 좋겠단다. 그렇구나. 죽음이란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보는 그 쉬운 걸 못한다. 아직은 맞춤법도 철자도 다 서툰 딸의 편지를 읽는데 눈물이 절로 나왔다. 이건 진짜 차오르는 슬픔이다. 해석하면 대충 이런 내용이다.
“사랑하는 마리타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라도 당신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당신은 내게 참 친절했어요. 나는 당신에게 마지막 인사도 못했잖아요. 유감스럽게도 나는 당신이 정말 보고 싶어요. 고맙다는 말도 못 했는데. 지금까지 당신이 내게 한 모든 것들이 고마웠어요. 안녕. 나는 살면서 당신을 절대로 잊지 않을 거예요." 후루룩 써낸 아들의 편지에서도 감동적인 문구를 발견했다. “나는 이젠 당신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정원에 심은 식물들을 보면 항상 당신을 생각할 거예요.”
'낯선곳보통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마운 선생님, 도리스 풍크 (0) | 2019.05.11 |
---|---|
기다리는 즐거움 (0) | 2019.05.07 |
마리타에게 (0) | 2019.04.14 |
의사의 친절함에 반하다 (0) | 2019.03.10 |
마흔 두번째에서야 의미를 찾게 된 (0) | 2019.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