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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곳보통날

주말 부부

 

남편 없이도 푹 잘 자고 싶어서 요가 중년(요가 소년)의 굿 나이트 스트레칭을 꾹꾹 눌러 정성스럽게 했는데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뇌가 자꾸 깨어나는 걸 보니 오후에 누군가 권하는 커피를 거절하지 못하고 홀라당 마셔버린 게 후회막심이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침대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핸드폰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57분이다. 이 시간에 일어나 뭐라도 하면 다음날 하루가 또 힘들어지는 걸 아니 일어나고 싶은 욕망을 절제하고 다시 침대에 눕는다. 남편이 주중엔 다른 지역으로 간 후 숙면을 취하는 게 쉽지 않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란다. 습관이란 참 무섭다. 같이 살 적엔 소중함을 모르던 것을 떠나고 나면 절실하게 알게 되는 것들 중 남편이 옆에 있는 것도 그중 하나다.

 

주중엔 떨어져 있다가 금요일 저녁에 집에 돌아온 남편은 무슨 '사우디' 라도 갔다 온 느낌이란다. 일주일이 너무 길다고. 감옥에 수감된 사람들은 정말 가족들을 그리워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고. 하긴 오딧세우스 엄마도 아들을 그리워하다가 죽었다. 그리움에 죽은 사람이 어디 한둘 일까. 당장 남편의 부모님도 한국에서 오랫동안 못 만난 아들과 손자 손녀가 보고 싶으셔 병이 나셨다. 자식을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하는 것도 고문일 테지. 어쩌다 전화 통화만 해도 그 절절한 마음이 전화선을 타고 넘어온다.

 

한국에 살 적에도 가끔 남편 고향인 여수를 방문했다가 집에 돌아가는 기차역에서 어머님 아버님이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시며 손을 흔드셨다. 부모 자식 관계가 저렇게 애틋할 수도 있구나. 그러니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더 고통스러우실 게다. 처음엔 생경한 풍경이었다. 내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 어떤 순간에도 눈물을 보이신 적이 없기에.

 

함부르크에서 일할 적엔 남편이 집에 오는 대신 우리가 그곳에서 놀다가 일요일 저녁에 얘들만 데리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럴 때면 딸아이는 꼭 눈물 바람을 했다. 아빠랑 헤어지기 싫다면서. 주말에 다시 또 만날 텐데 그렇게 슬퍼한다. 아빠만 혼자 두고 오는 게 슬프다면서. 우는 딸을 보면 또 남편도 눈이 시뻘게진다. 장성한 아들이 결혼을 해서 아이와 함께 떠날 때도 눈물을 감추지 못하신 아버님처럼. 이젠 작년보단 좀 더 컸는지 딸은 울진 않는다. 울 것 같은 마음을 애써 꾹꾹 누르는 게 보일 뿐이다.

 

이번에 새로 간 독일 회사는 일주일에 35시간 근무다. 대부분의 독일 회사가 그렇듯이. 7시 반까지 출근해서 목요일까지는 4시면 퇴근이고 금요일엔 1시에 퇴근이다. 가족이 같이 살면 저녁이 충분하게 있는 삶이 가능한 근무 시간이다. 오후에 퇴근하면 학교에서 돌아온 얘들하고 실컷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저녁도 온 가족이 함께 먹을 수 있을 텐데 아쉽다. 남편이 완전히 회사에 정착할 때까지는 당분간 이사는 보류다. 주말 부부가 주는 장점을 최대한 누리면서 주말에 집에 오면 어떻게 잘해줄까 궁리하는 수밖에.